잘 낸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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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낸 화
  • 안동대학교 신문사
  • 승인 2020.09.28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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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 없는 무차별 분노, 화병의 원인

화는 불과 같아, 목적에 맞게 질러야

화를 내서 얻은 건 무엇인가. 오히려 잃은 게 많지 않았던가.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의 화에 대하여라는 책이 있다. 책에는 우리가 왜 화를 내는지부터 인간의 본성과 엮어 억제하고 다스리는 법까지 적혀 있다. 그가 이 책을 쓴 목적은 무엇일까. 독자가 이 책으로 말미암아 애초에 화를 내지 않고 화가 나도 멈추는 법과 다른 이의 화를 치유하기를 바랐다.

그는 필요한 상황에 제대로 된 대응을 위해 화를 내는 것은 필요하지 않다고 한다. 이성의 역할과 충동에 굴복하지 않음이 중요하다고. 말은 쉽다. 그까짓 화 안 내고 참으면 잘 지나가는데 못 참을 이유 있으랴.

나는 그의 말에 완벽히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왜 굳이 화를 참으며 속병 앓이도 해야 하는가. 화나면 화내라. 우리나라는 화병을 정신의학적 질병으로 정의하진 않지만 스트레스성 신체화 장애로 본다. 한때 미국 정신과 협회에서는 화병을 로마자 ‘Hwabyeong’으로 표기해 문화관련 증후군에 등록하기도 했다. 이런데도 참아서 장애를 얻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다.

화내기 전 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해보자. 화낼지 말지 고민하는 게 아니다. 내 건강을 포기하고도 화내야 하는가? 내가 화냄으로써 후회하지 않는 정당한 분노일까? 과연 이 화가 내가 처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일까?

화내는 데도 방향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 엄한 곳에 화내니 우리가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하고 점점 피로는 더해지는 거다. 깨어 있는 사람인 마냥 자신에게 피해도 없을 것에 화내보자. 그 삶은 얼마나 피곤하고 안쓰러운가.

그래도 화는 인간 본성이라 했던가. 우린 내면부터 화로 꽉 차 있다. 20151128일 자 조선일보 오피니언면에는 간장 두 종지라는 칼럼이 실렸다. 글쓴이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조선일보 부장급 기자였고 지금은 논설위원이다. “사람은 4명인데 간장 종지는 왜 2개만 주느냐. 그 중국집에 다시는 가지 않을 생각이다라는 졸렬한 내용을 써 큰 논란이 됐다. 또한 음식을 주문했고 음식이 나왔는데도 감사합니다’, 먹은 만큼 돈을 냈는데도 고맙습니다라고 말한다. 그게 이 이상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방식이란다.

음식을 먹고 감사를 표하는 건 수고한 요리사와 직원에게 보이는 예의지 이를 먹은 만큼 돈을 냈으니 불필요하며 이상하다고 화를 내고 글로 써낼 정도였을까. 반대로 따지면 가게 직원이 어서 오세요라고 인사할 필요도 없다. 심지어 간장 종지를 2개 더 갖다주며 죄송하다 사과한 일은 쏙 빼놓았다. 본인 얼굴에 침 뱉는 식의 화내기는 쓸모없다.

대면수업 하자는 게 그렇게 화낼 일이었을지 의문이 든다. 단순히 집에 앉아 강의 들으니 편했던 게 아닐까. 정말 질병 때문에 대면수업이 꺼려지는 건 아닐 테다. 한 학기 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으면서 피시방, 노래방, 식당과 같은 다중이용시설에 한 번도 가지 않았을 리가 없다.

제한적 대면수업이 시작되고 한 단과대 건물에 방문했다. 발열 체크하고 출입 명부 관리하는 근로 학생을 배치해뒀다. 기가 찬다. 그들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있다. 당시엔 점심시간이라 출입 학생이 많았지만 그 누구도 마스크 쓰지 않은 자를 신경 쓰지 않았다. 대면수업을 한다고 했지만 방역 매뉴얼을 확실히 정립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또 학생들은 우르르 나와서 다 같이 대학가 식당에 가고 저녁엔 술집에 모여 웃고 떠든다. 단과대 건물 앞 벤치에 앉아 마스크는 턱에 걸치고 담배 피우며 침을 아무 데나 뱉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렇게 질병이 무서워 대면수업 하기 싫다던 대중은 다 어디 갔는지 찾을 수 없었다.

불도 제 상황에 맞게 지펴야 한다. 담배 한 개 피우겠다고 큰불 질렀다 잔잔하던 들판 홀랑 태우지 말란 소리다. 화가 필요도 없는 때에 괜히 화내서 봉변당한 경우가 많이 보인다. 방향도 중요하다. 바람을 잘 타야 불길이 잘 붙는다. 엉뚱한 방향으로 화냈다가 본인이 엉뚱한 사람 되기 딱 좋다.

이왕 내 돈 내고 다니는 대학에서 한 번쯤은 이성적으로 화도 내보자. 술에 잔뜩 취해 헤어져 뒤돌아선 이성에게만 화내지 말고. 옹졸하다.

정현진(국어국문·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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