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이 땅의 터줏대감, 호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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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이 땅의 터줏대감, 호랑이
  • 이영훈 기자
  • 승인 2020.06.08 15: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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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호랑이보존센터에 있는 백두산 호랑이 한청이가 하품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속담 중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라는 속담이 있다. 어떠한 어려움이라도 해결책이 있기 마련이라는 뜻이다. 이외에도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호랑이 새끼를 잡는다’, ‘호랑이 꼬리를 잡은 셈이다등 호랑이를 주제로 한 여러 속담이 전해 내려온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호랑이의 무서움과 용맹함에 빗대어 많은 교훈을 만들어냈다. 또한 민화 호랑이’, ‘무당 호랑이 설화등 작품을 통해 호랑이는 과거부터 한반도에 서식했으며 선조들의 삶과 연관돼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한반도에선 그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대한민국의 호랑이는 이미 멸종돼 동물원이 아니라면 찾아볼 수 없는 상태다. 과거 험악한 산골을 제집처럼 휘어잡으며 무서울 것 없이 용맹했던 호랑이는 어디로 간 것일까? 맹수의 왕. 한반도의 지배자 호랑이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대단히 크고 무서운 고양이?

호랑이는 고양잇과 포유류 중 몸집이 가장 거대한 동물이다. 평균 몸길이는 2.5~3m며 몸무게는 300kg에 육박하는데 이 거대한 몸으로 최대 60km의 속도를 낼 수 있다. 나무 등에 발톱 자국을 남기거나 자신의 오줌 냄새로 영역을 표시해 그 안에서 독립적인 생활을 한다. 주로 밤과 새벽에 활동하는 야행성 동물로 사람보다 안구 세포층이 한 겹 더 두꺼워 야간 시야가 약 6배 밝다. 먹이는 사슴·토끼·들소 등 초식동물부터 늑대·표범·곰 등 육식동물과 견과류·풀 등의 초본 식물까지 다양하다. 야생 호랑이는 하루 평균 9~60kg의 먹이를 섭취하지만 사냥 성공률이 20%가 채 되지 않고 첫 공격에 실패할 경우 대게는 다시 시도하지 않아 온종일 굶는 날도 많다. 짧은 사냥에 특화돼있는 신체 특성상 사냥에 오랜 시간을 투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고양잇과 포유류와 구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물을 굉장히 좋아한다는 점이다. 5~6km의 거리는 한 번에 헤엄칠 수 있을 정도로 수영에 능해 야생 호랑이의 경우 헤엄을 쳐 강이나 호수를 건너기도 한다. 또한 사람마다 지문이 다른 것처럼 호랑이도 개체별로 줄무늬의 특징과 모양이 다르다. 이들의 줄무늬를 통해 아종과 어떤 호랑이인지를 구별할 수 있어 사람의 지문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외에도 침에 살균 효과가 있어 자연치료에 탁월하다는 점도 특징이다.

다 같은 호랑이가 아니야!

호랑이는 4,300만 년 전에 지구상에 존재했던 미아키즈로부터 진화한 고양이류의 아종이다. 고양이류는 진화 과정에서 현재의 고양이류와 스밀로돈이라 불리는 검치호랑이 계통으로 나뉜다. 검치호랑이는 송곳니가 두드러지게 발달한 것이 특징인데 자신보다 몇 배나 큰 매머드 사냥이 가능했을 정도로 대단한 힘을 가졌다. 1만 년 전까지 지구에서 번성했지만 극심한 기후변화로 초식동물이 줄어들어 먹이가 부족해 멸종했다고 알려졌다.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는 고양이류는 고양이속과 표범속으로 나뉘는데 호랑이는 사자·표범·설표 등과 더불어 표범속에 속하는 동물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호랑이의 종은 9아종으로 이중 3아종(카스피 호랑이·발리 호랑이·자바 호랑이)은 이젠 지구상에서 찾아볼 수 없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호랑이 아종은 인도차이나 호랑이·말레이 호랑이·수마트라 호랑이·벵골 호랑이·남중국 호랑이·시베리아 호랑이 총 6아종으로 중국·인도·방글라데시 등에 분포해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남아있는 호랑이 역시 멸종 위기에 처해있다. 무분별한 서식지 파괴·불법 남획·새끼 호랑이 집중적 포획·먹이사슬 파괴 등이 대표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1914년에 약 10만 마리던 야생 개체수가 2014년엔 5천 마리로 줄었고 2016년엔 3,890마리로 줄어들었다. 돌아오는 호랑이해인 2022년엔 야생 호랑이를 찾아볼 수 없을 것이라는 암담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반도의 호랑이

흔히 백두산 호랑이라 불리는 한반도 호랑이는 시베리아 호랑이와 같은 아종으로 아무르 호랑이라 불리기도 한다. 가장 북방지역에 서식하는 종으로 체온을 유지하기에 알맞게 털이 길고 빽빽하며 몸집이 가장 크다. 한반도 호랑이는 백두산 호랑이·금강산 호랑이·지리산 호랑이 등 유명한 산의 이름으로 불렸을 정도로 전국의 명산이라면 어디에나 살았다. 산지와 습지가 많고 다양한 동물이 서식했던 한반도는 호랑이에겐 좋은 터전이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만큼 과거엔 자연 생태계가 안정됐다는 말이기도 하며 불법남획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선조들의 설화·그림·속담 등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우리의 호랑이는 19세기 이후 자취를 감추게 된다. 남한의 경우 자연멸종, 북한의 경우 함경북도 일부 지역에 서식 가능성이 제시되며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됐다. 이 땅의 호랑이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한반도 호랑이의 역사는 아주 먼 옛날부터 이어져 온다. 선사시대 벽화인 반구대 암각화에선 함정에 빠진 호랑이와 새끼를 거느린 호랑이 그림이 있고 고구려의 수렵도·삼국사기 등에서도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태종실록·숙종실록·영조실록 등엔 호랑이로 인해 매해 수백 명의 사람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다는 기록이 실려있다. 이렇듯 선조들은 좁은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호랑이의 서식지를 개간해야 했고 이 일로 호랑이와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조선시대엔 착호갑사라는 정예부대를 만들어 호랑이를 포획하기 시작하는데 포획한 자에게는 보상과 벼슬을 내리는 등의 동기부여를 할 정도로 중요시되는 일이었다. 이러한 호랑이 포획은 임진왜란 이후 총이 등장하며 더욱 활기를 띠었고 일제강점기에 들어선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명분만 좋았던 정책

일제의 침략으로 나라의 주권을 빼앗겼던 시절. 조선총독부는 해수구제정책을 펼치게 된다. 해수구제정책은 사람과 재산에 위해를 끼치는 해수를 구제한다는 명분으로 한반도 내 야생동물을 퇴치·포획하는 정책이다. 당시 조선총독부는 정호군이라는 호랑이 퇴치부대를 만들어 전국의 호랑이를 마구 잡았다. 백성들은 이들의 행보를 열렬히 지지했고 1915년부터 1924년까지 총 89마리의 호랑이를, 1933년부터 1942년까지 총 8마리의 호랑이를 남획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포획 수가 줄어드는 것은 호랑이가 멸종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정책의 큰 문제점은 총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야생동물에 대한 체계적인 보전계획 없이 진행됐다는 점이다. 이 정책의 표적은 호랑이뿐만 아니라 표범, 늑대, , 스라소니 등의 동물도 포함됐는데 이 동물들이 생태계에서 담당하는 역할·위치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무분별한 남획은 결국 생태계의 질서를 파괴해 동물들의 터전을 짓밟는 행위가 됐다. 두 번째는 해수구제정책 자체가 위험 동물로부터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펼쳐진 정책이라는 것이다. 일본은 조선을 통해 대륙으로 뻗어나가길 원했지만 어느 산맥에나 서식하는 사나운 맹수들이 큰 골칫거리였다. 그런 그들에게 해수구제정책은 표면적으로는 문제가 없으며 맹수의 수를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는 매력적인 방법이었다. 즉 해수구제정책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그럴듯한 명분으로 우리의 동물을 멸종시킨 무책임하고 비양심적인 정책이다. 이후 6·25전쟁과 산업의 가속화로 서식지가 파괴 됐으며 1921년 경주 대덕산에서 포획했다는 마지막 기록 이후 대한민국에서 호랑이는 멸종된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야생 시베리아 호랑이는 백두산과 장백산·중국 둥베이 지방의 소흥안령 일대·러시아 지방의 연해주와 흑룡산 등의 한정된 지역에만 잔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킬 방법은 없는 거야?

우리나라 환경부는 백두산 호랑이를 RE(지역 절멸) 야생생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산림청에선 1994년 중국과의 국교수립기념으로 수컷백두와 암컷천지를 들여온 이후 시베리아 호랑이를 들여와 교배에 힘썼다. 하지만 호랑이의 임신 가능 기간은 1년에 고작 4~5일이며 한 번에 2~4마리의 새끼를 출산하기에 번식이 쉽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백두’·‘천지’·‘압록’·‘금강등 많은 호랑이가 잦은 환경변화로 인한 스트레스와 연이은 합사·교미로 세균형 신장염·위궤양·패혈증을 앓고 폐사했다. 이와 더불어 호랑이 두만이는 서울동물원에서 혈통 등재 여부에 대해 등재 불가판정을 받아 순수혈통의 백두산 호랑이라 부르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이렇듯 호랑이의 불분명한 순수혈통 판정과 호랑이 관리 지식 부족 등의 모습을 보인 산림청의 백두산 호랑이 복원사업은 좋지 못한 시선을 받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범보전기금은 남한에서의 야생 호랑이 복원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러시아 연해주에 서식하는 야생 호랑이의 개체 수를 안정적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호랑이는 자신의 영역 안에서 독립된 생활을 하기에 자신의 영역을 찾기 위해 주변 지역으로 퍼져나갈 것이고 이런 자연스러운 방법을 통해 러시아부터 중국·한반도를 잇는 거대한 서식지가 형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산림청은 이전의 실책을 줄이고 체계적이며 안전한 호랑이 보존을 위해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백두산호랑이보존센터를 건립한다.

우리의 호랑이는 우리의 손으로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수목원이다. 백두대간의 체계적인 보호와 산림 생물자원을 보존하는 목적으로 건립됐다. 전 세계에 단 두 곳뿐인 2.100규모의 지하 터널형 종자저장시설은 백두대간 수목원을 대표하는 시설이다.

이곳에 위치한 백두산 호랑이보전센터는 국내 백두산 호랑이 유전자원을 확보하고 종 보존을 목표로 건립됐다. 현재 백두산호랑이보존센터에는 19살 수컷 두만’·15살 암컷 한청’·9살 수컷 우리’·7살 남매 등 시베리아 호랑이 5마리가 생활하고 있다. 백두산호랑이보존센터의 가장 큰 특징은 자체적으로 만든 작은 숲에 호랑이를 방사해 보호하는 것이다. 이 호랑이 숲의 전체 면적은 48,000로 국내 단일동물 중 최대 활동공간이다. 좁은 활동 구역 때문에 발생하는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고 자연과 어우러진 생활환경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물론 야생 호랑이의 활동면적에 비하면 많이 부족한 크기며 혈통 문제가 있어 백두산 호랑이의 완전한 보존이라 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현실적으로 국내에서 호랑이가 생활하며 번식하기에 가장 체계적이고 좋은 환경이라는 점이다. 백두산호랑이보존센터 측은 이러한 환경으로 호랑이들의 운동량이 이전보다 풍부해지고 스트레스 반응이 적어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현재 만 19살인 두만이는 노령으로 사지에 퇴행성 관절염과 양쪽 앞다리에 내형성 발톱이 있어 보행에 장애가 있다고 진단받았다. 사육 환경 호랑이의 평균 수명이 17~20세 이기에 상당한 노령호랑이라 볼 수 있다. 이에 백두산호랑이보존센터는 통증 조절을 위한 소염진통제, 사료량 조절 등 조치를 취하고 있으며 두만이의 신경이 예민해지지 않도록 주위 환경을 관리하는 등 상태 악화를 막기 위해 힘쓰고 있다. 현재까지 산림청의 호랑이 보존사업은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진 못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백두산 호랑이 복원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중이다.

남겨진 자들의 역할

호랑이는 예로부터 용맹함과 공포의 상징으로 우리의 기상이었다. 우리 선조는 호랑이를 수많은 속담·설화·민화 속에서 용맹하기도 하면서 두렵고 신령스러우면서도 친근하게 풀어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동양권에서는 흰 털을 가진 호랑이인 백호를 하늘의 사신 중 한 영물로 여기며 신성시했다. 이렇듯 호랑이는 단순한 맹수가 아닌 우리 역사며 마음의 정서를 담아낸 상징이다.

그들은 우리의 선조의 선조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이 땅에 자리 잡아 살아왔다. 그런 그들을 역사 속의 한 장면으로 남겨버린 것은 누구며 그것은 과연 올바른 방법이었는지, 단지 우리의 삶을 위해 희생된 것은 아닌지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민경록 백두산호랑이보존센터 주임은 과거 무분별한 개발과 산업발전이 가속화되며 야생동물의 터전이 점점 줄어들고 있고 멸종 위기의 야생동물 개체도 급증하는 추세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이러한 동물을 보호하고 미래 후손들에게 백두산 호랑이를 전해줄 의무가 있다며 백두산 호랑이를 보존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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