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의 골짜기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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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골짜기 속에서
  • 이영훈 기자
  • 승인 2020.05.11 14: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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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살아가며 얼마나 많은 인연을 맺는지. 그중 기억되는 인연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당장 나조차도 대부분의 인연을 잊은 채 살아간다. 서로의 무관심 속에서 자연스럽게 멀어질 때도 있었고 갈등의 골이 깊어 등을 돌린 채 그대로 잊어버리기도 했다.

내 주변도 비슷하다. 많은 사람이 타인과 함께 어울리며 웃고 즐거워한다. 하지만 즐거움을 얻는 사람이 많은 만큼 갈등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도 많다. 친구 혹은 연인 간의 싸움, 부모님과의 다툼부터 직장 상사와의 마찰까지 그 대상도 다양하다. 어쩌다 그런 일이 일어났냐고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대부분 비슷하다. 상대방의 말투나 행동이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가치관이 너무 달라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 물론 이것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느끼는 감정이 다르기에 서로를 완벽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종종 그런 친구들에게 화해하고 싶어? 갈등을 풀고 싶어?”라는 질문을 먼저 한다. 마지못한 화해는 서로에게 입은 마음의 상처를 강제로 꿰매놓는 일이라 생각한다. 이를 진짜 화해라 부르진 않는다. 단지 타협일 뿐이다. 사람의 마음은 얕은 듯 깊고 좁은 듯 넓다. 변화의 기복 또한 심해 어디로 튈지 예상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그만큼 소중한 것이 마음이다. 그러니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선 소중히 대하고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한다.

사람이 사람을 살린다라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육체적인 삶뿐 아니라 정신적인 삶을 포함해 우리는 사람에 의해 죽고 사람에 의해 살아간다. 만약 당신이 사람에게 상처받아 마음의 문을 영원히 닫아 버린다면 그것은 응급처치에 지나지 않는다. 더는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을 욕하려는 게 아니다. 하지만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은 그 상처를 영원히 흉지게 할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변함없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은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처럼 불편하고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사람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생텍쥐페리의 소설 아리스로의 비행에는 이런 글이 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육체가 쓰러지면 그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인간은 관계의 덩어리라는 것을. 오직 관계만이 인간을 살게 한다는 것을참 공감되는 글이다. 사람은 마음의 문을 닫은 채 홀로 살아갈 수 없다. 당장은 피해도 좋다. 마음이 너무 쓰라리고 무너져 내릴 것 같다면 굳이 마주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당신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 있다면 분명 기쁨을 주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만약 당신을 진심으로 이해하려 노력하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그땐 조심스럽게 마음의 문을 열도록 하자. 그런 사람들과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은 당신 마음에 자리 잡은 깊은 상처를 위로해줄 것이며 다시 살아갈 힘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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