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대학 민주열사, 김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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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대학 민주열사, 김영균
  • 김규리 기자
  • 승인 2020.05.11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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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무장권력에 맞선 청년
마지막 길에도 “공안통치 분쇄”
지난 1일 학생회관 앞 민주광장에서 김영균 열사 기재사를 하고있다.
지난 1일 학생회관 앞 민주광장에서 김영균 열사 기재사를 하고있다.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봄은 가장 잔인한 계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대학도 19915, 일찍 떠나보낸 학생이 있다. 바로 민속학과 90학번 김영균 열사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선배

김 열사는 노태우 정권에 대항한 학생 열사다. 노태우 정부는 1988년에 들어서 노동 민주 통일 운동을 폭력으로 탄압했다. 그러던 1991426노태우 군사 정권 타도 시위중이던 명지대학생 강경대 열사가 전투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사망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민주화 운동이 물결쳤다. 그해 429일 전남대학생 박승희 열사의 분신으로 총 11명의 열사가 희생한 분신정국이 시작됐다. 같은 해 51일 우리대학 민주광장에서 강경대 열사 추모 및 공안통치 분쇄를 위한 범안동대인 결의대회가 열렸고 김 열사는 노태우 정권 타도, 공안통치 분쇄를 외치며 분신했다. 이후 김 열사는 경북대 화상 병동으로 이송됐으나 전신 80%3도 화상을 입었으며 기관지 절개 수술을 받아 말을 할 수 없는 위독한 상황이었다. 결국, 다음 날인 52일 저녁 숨을 거뒀다.

김 열사는 20014월 민주화 운동 명예회복 대상자로 선정돼 명예 졸업장을 받았고 교내에 추모비가 건립됐다.

행복해야 해, 예쁜 꿈 꿔

지난 1일 오후 12시 민속학과 소리 학생회와 김영균열사추모사업회(추모사업회)가 학생회관 앞 민주광장에서 29회 김영균 열사 기제사를 진행했다. 김 열사 추모제는 우리대학의 연례행사로 민속학과 학생회와 추모사업회에서 공동 주최·후원하며 대개 4월 말부터 5월 초 사이에 3일간 진행된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추모제를 생략하고 최소한의 인원으로 기제사만 간단히 진행했다. 유채린(민속·17) 민속학과 학생회장은 매년 추모제를 하기 전에 정기총회를 가져 선배님들과 함께 뜻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지만 코로나19로 기제사만 간단히 올리게 돼 선배님들과 만나는 자리를 갖지 못해 안타깝다뜻깊은 자리에 민속학과 학우들이 참석하지 못하고, 같이 추모를 하지 못한 점이 아주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기제사를 지내며 잠시나마 선배님의 아픔을 함께 느꼈던 시간이 됐다고 전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김 열사를 모르는 학생이 늘어간다. 공과대 A학생은 학교를 3년 다니면서 이런 사건이 있었다는 걸 전혀 몰랐다여태까지 몰랐던 나도 부끄럽지만 내 주변 친구들도 잘 모른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학교에서 홍보해주면 좋을 거 같다고 말했다.

 

거기 누가 웅크린 흙으로 누웠는가

그 위에 누가 뚝뚝 눈물 흘리며

찢겨진 가슴을 기대는가

아직도 슬픔은 젖은 깃발에 머물고

어둠은 켜켜이 쌓여 피노래를 부르는가

이제 더 이상 죽음은 없다

어서 오라, 나는 민주광장에 있다

달려 오라, 나는 투쟁의 거리에 있다

끝없는 항쟁의 길 위에 지쳐 쓰러진 자여

나는 지금도 싸우고 있다

영균이는 지금도 불타고 있다

 

-행복해야 돼, 이쁜 꿈 꿔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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