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n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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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n번방
  • 이용규
  • 승인 2020.05.11 14: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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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학생이 받은 문자 메시지다.
원 학생이 받은 문자 메시지다.

지난 316일 미성년자 성 착취 영상을 촬영해 텔레그램에서 유포한 혐의를 받는 박사방운영자 조주빈(25) 씨가 검거됐다.

텔레그램 n번방·박사방 사건은 미성년자를 포함한 일반 여성들을 상대로 한 성 착취 영상이 해외 모바일 메신저인 텔레그램에서 대대적으로 공유·판매된 엽기적인 성범죄다.

‘n번방1번부터 8번까지 각각 다른 이름이 붙여진 8개의 텔레그램 비밀대화방이며 박사방박사라는 닉네임을 가진 인물이 운영해 붙은 이름이다. n번방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의 성 착취 영상을 올리고 이들의 신상정보까지 모두 공개했다. 또 피해자들이 자신들에게 복종하도록 극심한 고통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피해 여성은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하고 외출할 때 늘 얼굴을 가린 채 다녔다고 밝히며 마음의 상처가 크다고 말했다. 이들은 문화상품권이나 가상화폐처럼 추적이 어려운 금품으로 거래하고 방문자들에게 채팅방 링크를 공유했다. 텔레그램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어 압수수색이 어렵고 대화 기록을 지우는 기능이 있어 이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n번방은 2018년 하반기부터, 박사방은 작년 7월부터 운영됐다. n번방은 갓갓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인물이 성 착취 영상물을 올리는 것으로 시작됐다. 갓갓은 트위터 일탈계정에서 활동하는 10~20대 여성 사용자들에게 접근해 해킹 링크, 경찰 사칭해 개인정보를 알아냈다. 일탈계정에선 신상 노출 없이 온라인 만남, 음란 화상 교환, 금전거래 등이 이뤄진다. 이후 신상 공개를 빌미로 피해자들을 협박해 성 착취 영상물을 요구했다. 그러나 갓갓은 20192월 닉네임 와치맨에게 자신의 방을 넘겼다. 와치맨은 작년 9월 자취를 감췄지만 성 착취물을 공유하는 n번방은 지속됐다.

작년 7n번방을 모방해 더욱 자극적인 성 착취물을 공유하는 박사방이 등장했다. 해당 방 운영자 조 씨는 트위터나 채팅앱에서 여성들을 유인해 노예라 칭하며 몸에 노예나 박사라는 표식을 새겼다. 박사방에서 확인된 피해자는 미성년자 16명을 포함해 70명이 넘는다. 박사방은 영상을 볼 수 있는 맛보기 대화방에서 시작했으며 일정 금액의 가상화폐를 지급하면 3단계로 이뤄진 유료 대화방에 입장이 가능하도록 운영됐다. 조 씨는 방문자들의 신분증으로 본인 인증을 하며 박사방 정보유출을 치밀하게 막았다. 거래는 항상 비트코인이나 암호화폐를 이용해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했다.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이곳에 입장한 사람은 최소 수만 명에서 최대 26만 명(중복집계)으로 추정된다.

디지털 성범죄 처벌은?

닉네임 와치맨으로 활동한 전 씨는 38세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자취를 감췄던 와치맨은 작년 10월 음란물 사이트 운영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며 지난 2n번방 운영 혐의가 기소돼 두 사건이 병합됐다. 전 씨 사건은 수원지방법원에서 재판 중이다. 와치맨 체포 후 지난 2, 또 다른 운영자 17명과 이용자 50명이 검거됐다. 박사방은 조 씨의 인출책이었던 부따가 다른 범죄 혐의로 체포됐다가 경찰 조사에서 범죄 사실을 실토해 밝혀졌다. 해당 사건의 피의자와 관련자의 신상을 공개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참여자가 200만 명을 넘어섰다. 이에 신원이 공개됐고 조 씨가 수도권 한 대학에서 정보통신을 전공했고 2018년 졸업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가 학보사 편집국장으로 활동했으며 4학기 중 3학기 평균학점이 4.0이 넘는다고 알려져 더 충격을 주고 있다. 부따의 신상도 지난달 17일 공개됐다. 미성년자 신상공개는 이번이 처음이다. 한편 지난달 3일 조 씨의 오른팔 A 씨는 군인 신분으로 수백 회에 걸쳐 성 착취물을 유포하고 박사방을 외부에 홍보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한편 박사의 후계자로 알려진 닉네임 태평양은 담당 재판부가 변경됐다. 태평양으로 활동했던 이(16) 군은 10대로 박사방과 별개로 다른 성 착취물 공유방을 만들어 운영해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달 14일 서울지방경찰청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단은 조 씨에게 개인정보를 전달한 전·현직 공무원들을 지난달 11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했다고 밝혀 충격을 줬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지난달 20일 전체회의를 열어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범죄(청소년성보호법 11)의 형량, 범위 등 집행유예 기준을 논의했다. 양형위원들은 기존보다 높은 양형 기준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지난달 29일 이른바 텔레그램 n번방 재발 방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처벌 범위가 확대돼 성 착취물 등 온라인 성범죄 처벌 수위가 무거워질 전망이다. n번방 방지법은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 형법 개정안,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이다. 현행법은 배포·판매만 처벌 대상이다.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으로 불법 성적 촬영물 등을 소지·구입·저장 또는 시청한 사람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조항을 신설하는 내용이 추가됐다.

우리대학 학생 사칭 피해

지난 320텔레그램 n번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 공개를 원합니다국민청원 역시 200만 명을 넘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 지식인에는 텔레그램 박사방과 n번방을 탈퇴했어도 처벌받는지 문의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우리대학에서는 SNS에서 허위사실이 유포돼 원예찬(기계설계·19) 학생이 피해를 봤다. 누군가 원 학생을 사칭해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n번방 신상 지워드림에서 부모님한테 걸리면 안 돼요라며 거짓 거래를 요구했고 이를 캡쳐해 각종 SNS에 공유했다. 해당 게시글에는 원 학생의 휴대전화 번호까지 나와 있었다. 원 학생은 지난 322일 새벽 29분부터 전화 테러를 당했고 지인으로부터 에브리타임에 해당 게시글이 올라간 사실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원 학생은 지난 323일 포항남부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원 학생은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이 있듯이 확실하지 않은 정보를 무조건 믿고 나서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디지털 성범죄 지원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은 24시간 운영되는 여성 긴급전화 1366과 디지털 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로 지원을 요청하면 특별지원단에서 신속한 성 착취물 삭제, 심층 심리치료, 상담과 수사, 개인정보 변경 등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미성년자의 경우 부모 동의 없이도 신속한 삭제 지원이 된다. 피해자들은 치료비, 생활비, 학자금 등 경제적 지원도 받을 수 있으며 주거 환경이 열악한 경우 임대주택 등 주거 지원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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