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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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 서영건
  • 승인 2019.12.03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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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만 졸업한 후 거리에 나선 그가 배운 것이라고는 도둑질뿐이었다. 절도로 생계를 유지하다 경찰에 붙잡히고 처벌을 받고 나면 어떻게든 바르게 살아보려 했지만 결국 그는 험준한 세상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가 받은 형량은 징역 7년에 보호감호 10, 도합 17년이다. ‘보호감호는 재범 가능성이 있는 피고인의 교화, 사회 복귀를 위한 직업훈련을 목적으로 보호감호수용시설에 수용했던 제도다.

그의 이름은 지강헌(당시 35), 가정집에서 556만 원을 절취한 혐의로 위와 같은 형량을 선고받는다. 당시 사회보호법은 지강헌에게 10년의 보호감호에 처하도록 했다. 징역 7년의 수감생활이 끝나면 10년의 감호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다.

같은 해 전두환의 막내동생 전경환이 수 십억 원대 횡령 10억 원의 탈세 417백만 원의 뇌물 수수 등 일곱 가지 죄목으로 기소됐다. 그에게 선고된 형량은 징역 7년에 벌금 22억 원, 추징금 9억 원이었다. 이마저도 곧 감형과 사면이 이뤄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았고, 이 소식은 지강헌을 비롯한 수형자들도 접하게 된다. 수형자들 사이에서는 형량보다 기나긴 보호감호기간의 막막함과 자신보다 더한 죄를 저지른 권력자의 적은 형량에 대한 억울함이 문제를 일으키고 만다. 같은 해 108, 지강헌을 비롯한 12명의 수형자들은 이감을 가던 호송버스 내에서 소동을 일으키며 탈주한다.

탈주한 12명 중 7명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체포됐다. 하지만 나머지 5명 중 지강헌을 비롯한 4명은 서울 시내 가정집 곳곳을 돌며 절도와 강도를 일삼다가 1015일 밤 9시경 한 가정집에 들어가 일가족을 인질로 잡는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경찰은 1천여 명의 경찰을 현장에 출동시켜 지강헌 일행이 있는 집을 포위했다. 지강헌 일행은 자신들의 주장을 TV로 생중계해달라는 요구를 했고 경찰이 그 요구를 받아들임으로써 인질극이 전국에 생중계되는 유례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지강헌 일행이 사회를 원망하며 외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어구 역시 생중계를 통해 전국에 알려지며 이 사건을 상징하는 표현이 된다.

인질극을 벌이긴 했으나 당시 인질들은 정중한 태도로 존댓말을 썼다. 협박하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전혀 우리한테 흉기를 갖다 댄다거나 그런 적이 없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하지만 이 인질극은 결국 피로 끝을 맺는다. 인질범 4명 중 한 명은 지강헌의 위협으로 자수하고, 다른 둘은 호송버스에서 탈주할 당시 교도관한테 빼앗은 권총을 이용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지강헌은 깨진 유리로 자해를 시도하던 도중 경찰의 총격을 받아 과다 출혈로 숨진다.

이 사건 이후 보호감호기간을 최대 7년으로 제한한다. 하지만 사실상의 이중처벌이 위헌이라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며 결국 2005, 보호감호제도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하지만 정신적 문제나 상습 범죄를 저질러 오는 등 재범 가능성이 큰 범죄자로부터 사회를 보호할 필요성 역시 완전히 배제하긴 어렵다.

대표적인 예로 2008년 여아를 성폭행 후 징역 12년을 선고받아 복역 중인 조두순이 있다. 그의 출소를 약 1년 앞둔 가운데 여론은 부정적이다. 지난 2017년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조두순을 재심해서 무기징역으로 처벌해야한다는 글이 올라왔고, 615,354명이 이 청원에 참여했다. 하지만 현행법상 조두순의 재심은 불가능하다. 재범 가능성이 큰 흉악범죄자를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하는 방법은 현행법상 사형 또는 무기징역을 선고하는 것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국민들의 법 감정에 부합하진 않더라도 법원은 범죄자의 남은 삶 전부를 철창 속에서 보내는 게 타당한지 신중하고 엄격히 판결을 고민해야한다. 헌법 제11조의 법 앞의 평등은 이런 부분에서도 작용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죄와 벌은 상당한 난제다. 죄인은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점은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죗값은 과해서도, 부족해서도 안 된다. 적당한 형벌이 어느 정도냐의 답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상이하다. 죄와 벌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 그것은 우리 법학도와 법률가들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고민해야할 난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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