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회 솔뫼문화상 수필 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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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회 솔뫼문화상 수필 입선
  • 안동대학교 신문사
  • 승인 2019.12.02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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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習慣)의 권태(倦怠)

정진우(회계·14)

 

진우야, 너 방금 그거 보기 안 좋다. 고쳐라.” 술잔이 제법 오간 뒤, 친구가 못 보던 습관이 생겼다며 무엇인지 되묻는 내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 다시 보여주었다. 치아 교정을 한 뒤부터 입안의 이물감을 없애며 생긴 버릇 이었을까. 어쩌면 교정을 하기 이전에도 그런 행위를 나도 모르게 해오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내 자신도 모르는 습관이 또 무엇이 있을까. 이미 그러한 이물감에 신경이 쏠린 뒤인지라, 유쾌한 술자리였지만 이야기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술잔을 채운다.

 

오늘 아침, 하루를 준비하기까지 어떻게 했는가. 몸에 베인 습관대로 움직였으리라. 씻고 옷을 갈아입고, 수업을 들으러 가기까지, 머리부터 감았는지. 양치는 왼쪽부터 했는지. 옷은 위에서부터 갈아입었는지. 일부러 인식하려 하지 않는 이상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것들이다.

무슨 고민이 그렇게 많아서 생각에 잠겨 있느냐친구가 부르지 않았다면 내가 어떤 순서로 씻는지 확인해보러 가고 싶었다며 엉뚱한 소리를 하자, 오히려 좀 전에 한 이야기가 신경 쓰였다면 미안하다며 사과를 한다. 그리곤 각자의 사소한 습관들, 어딘가로 이동하기 전 챙기지 않은 물건은 없는지 성에 찰 때까지 확인 한다거나, 시험공부를 시작하기 전 책상 정리를 한다거나, 볼일은 꼭 집에서만 본다거나. 따위의 습관 혹은 버릇에 대해 안주삼아 떠들기 시작했다.

 

습관 혹은 버릇하면 떠오르는 대학 동기가 있다. 그의 습관 때문에 멀어지게 되었다. 정확히는 그 친구의 한숨 쉬는 버릇 때문이다. 삶이 항상 유쾌할 수는 없고 늘 좋은 일만 가득할 수는 없지만 그 친구의 첫 마디는 한숨과 불평이었다. 세상을 혼자 사는 듯 한 그의 습관에 대해 다른 친구들과 함께 지적 아닌 지적도 해보았지만, 변함없는 그에게서 나 역시 슬픔과 고뇌가 버릇이 되진 않았는지.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까지 불편하게 하진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탓에 잠 못 이루던 내 자신을 보면서 나 역시 고민이 습관이 되어버렸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문제 해결을 위한 고민이 어느덧 습관처럼 잡생각으로 이어진 것이다. 집안 문제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고민과 같은 큰 문젯거리부터 친구와 다투었다 따위의 사소한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들까지. 고민한다고 해서 스스로 해결 할 수 없는 범위의 문제들과 씨름하느라 주변 사람들로 부터 생각이 많다는 핀잔을 듣곤 했다. 어느 순간부터 고민을 위해 고민하고 있는, 고민거리를 만들어 내고 있는 자신을 보며 필요 이상으로 시간과 감정을 쏟고 있음을 느끼게 된 것이다. 이러한 나쁜 버릇을 고치기 위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어지럽게 널브러지는 생각들을 조금이나마 정리해 나가다 보니 그것들을 글로 써내려가는 습관이 생겼다.

 

누군가와 섣부르게 나의 고민을 나누었다가 상대가 그것을 나의 약점으로 이용했던 일을 겪은 뒤부터이다. 부모, 형제에게 조차 보여주기 부끄러운 내면의 민낯과 자신과의 대화를 써내려갔다. 원래 말 주변이 없었던 탓인지, 글로써 표현하는 것이 편했던 탓인지. 자연스레 나의 표현 방식은 글이 되었다. 오죽하면 첫 사랑에게 밤을 지새워 쓴 편지로 사랑고백을 했을까. 하지만, 이내 새롭게 생긴 나의 습관에서의 권태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고서 사람을 대하는 법이 서툴렀지만, 사람에게 상처받고 사람으로부터 치유받기를 반복하며 또다시 수많은 오해와 반목을 겪으며 사람으로부터 멀어진 뒤, 골방에 박혀 홀로 글쓰기를 반복했다. 또 다른 습관이 권태로워지면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펼쳤던 종이 위에는 고민의 흔적이 아닌 오히려 잡생각의 배설물들만 가득 차게 되었다. 수많은 용기를 모아 친구에게 이러한 병적인 악습관에 대해 털어 놓았다. 그 친구는 목욕탕에 가서 때나 밀자고 했다. 여러 가지 의미가 있었겠지만, 서로 발가벗은 뒤 탕에 들어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잡생각을 씻어내듯, 서로 때를 밀어 주었다.

 

그 후로 나는 생각이 복잡해질 때면 혼자서 목욕탕을 찾는 버릇이 생겼다. 이른 아침부터 집을 나와 머리를 정리한 뒤, 목욕탕으로 향한 뒤, 마치 그 곳에서 답을 찾은 서양의 위인처럼 떨어져 나가는 때를 보며 생각의 때가 밀려나가는 것 마냥 대리만족하곤 했다. 누가 나를 그 곳에 밀어 넣은 것도 아니건만, 한증막 사우나 속에서 고민에 대해, 특히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며, 가슴이 답답한 이유가 후덥지근한 한증막 탓인지, 누구의 탓인지, 어긋난 관계에서 나의 실수는 무엇이었는지. 서툴렀던 나의 행동을 자책했다. 결국 나 역시 한숨을 내뱉던 그 친구처럼 고민을 문제해결의 과정이라 위로하며 끌어안고 있는 습관을 인정하고서야 사우나 밖으로 나오곤 했다. 오히려 고민을 습관이라 쉽게 치부해 버린 순간, 고민으로부터 벗어나 똑바로 마주 설 수 있게 되었다. 습관이라 느끼며 습관을 고치려 했을 뿐, 문제의 본질에 대해서 마주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마음이 다른 곳에 가있었던 탓일까. 술자리는 어느새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이 자리를 만든 친구 역시 고민이 있었을 테지만 미처 말하지 못한 채 잊어버린 듯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저마다 고민과 문제를 안고 살아가지만, 저마다의 방법으로 해결해 나간다. 나 역시 스스로 해결해 보려 했지만, 그 과정과 방법들이 습관으로 자리를 잡은 채 권태를 느끼게 한다. 취하면 조금 나아질까 술로써 잔을 채워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다른 고민들로 채우지 않으려 했지만 나의 잔은 이미 번뇌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잔을 비우면 또 다른 고민으로 채워질까 두려워 술잔을 비우지 않았다. 그리곤 그 잔을 내버려 둔 채 술집을 나왔다. 좋은 일이 생겼냐며 웃으며 물어보는 친구에게 오늘 유쾌한 술자리라 기분이 좋다.”며 자리를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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