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회 솔뫼문화상 수필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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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회 솔뫼문화상 수필 당선
  • 안동대학교 신문사
  • 승인 2019.12.02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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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보내는 편지

손새로와(동양철학·16)

 

소식을 들은 것은 그 날의 새벽이었다. 새벽까지 술을 마셨고, 머리는 멍하기만 했다. 핸드폰 진동이 요란하게 울렸다. 사촌 언니였다. 평소 일이 없으면 전화를 안 하는 사람이었다. 가슴이 요동쳤다. 머리를 애매하게 눌러오는 통증을 견뎌가며 전화를 받았다.

아름아, 그 얘기 들었어? 할머니가 돌아가셨대..”

소식은 그렇게 내게 전해졌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떨리는 목소리를 참으며 전화를 끊고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되지 않았다. 몇 번 시도한 후에야 엄마와 통화가 되었다. 엄마는 내 말을 듣고 나서 알았다는 듯이 말했다.

지금 병원 가는 길이야. 갔다 와서 전화하려 했는데, 너도 빨리 올라와. 차비는 보내줄게.”

전화를 어떻게 끊었는지도 모르겠다. 서울로 가는 차편을 예매하면서도, 택시를 타고 터미널에 가면서도,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 안은 한산했다. 나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벌써 11시를 넘긴 때였다. 도로 옆의 한산한 장례식장에는 우리 가족들의 차들만이 있었다. 검은 상복을 입은 이모들이 보였다. 어른들은 장례식에 필요한 실질적인 일들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나는 인사 후에 그 옆에서 듣고 있었다. 엄마가 내게 검은 상복을 내밀었다. 아까 이모들이 입었던 옷이었다. 구석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거울로 비치는 검은 상복의 나는 낯설었다. 내가 아닌 것 같았다. 할머니의 영정사진이 놓인 방에 혼자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겁이 덜컥 났다. 죽음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은 아니었다. 나는 무서웠고, 두려웠다.

나는 밖에서 일했다. 내가 할 일은 아주 많았다. 이런저런 잡일들은 어리고 힘이 넘치는 내 몫이었다. 하루는 너무도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많이 왔었고, 나는 그만큼이나 바빴다. 그런 와중에도 새벽이 찾아왔다. 조용한 그 시간은 나를 안으로, 깊은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 안에서 나는 나로선 알 수 없는 슬픔을 보았다. 그 슬픔은 장례식이 끝난 이후에도 내 안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겉으로 웃고 떠들어도, 술을 마셔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반년 정도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나는 할머니께 채 하지 못한 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 바쁜 와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말하지 못했던 것이다. 급하게 노트북을 켰다. 내 못 다한 말을 하는 것으로 나는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새벽, 조용히 향 하나가 타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저 멀리 잠들지 않는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소리를 들으며, 사진 속의 당신께 눈 맞춰 보았습니다. 이상하기도 합니다. 내 시간은 지금도 이렇게 흘러가고 있는데 여기선 멈춰버린 것만 같습니다. 영원히 떠지지 않을 눈이지만, 지금 내 눈 앞에서 보이는 그 눈은 영원히 감기지 않겠지요. 역시나 세상이 멈춘 게 확실한 모양입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사람의 눈이 감기지 않겠습니까. 언제쯤 다시 시간이 흐를까요. 그때가 온다면, 미처 올리지 못했던 사이다 한 잔을 드릴 수 있을 것인데요.

그렇지만 이 모든 건 꿈에서나 혹은 아주 먼 후에나 가능하겠습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간과 당신이 살고 있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올 여름 내 세상은 무척이나 더웠습니다. 당신께서 살고 계시는 세상은 어떠셨습니까. 혹여 덥지는 않으셨습니까. 시원한 물에 목욕하시다가 감기라도 걸리시면 큰일입니다. 미끄러운 욕실에서 넘어지시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이제는 닿을 수 없는 말이네요. 들으실 수 있을 때 말해볼 것을 그랬습니다. 곁에 있지 못했다는 것은 핑계이지요. 나는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당신과 내가 함께 한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길었던 삶에 비한다면 나는 찰나에 불과하며, 그마저도 어릴 때라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억울하고 애석합니다.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그것도 이제는 소용이 없지요. 당신과 같이 살았던 시간들에서 기억을 더듬으면 늘 소리치고 화냈던 것만이 있습니다. 어렸던 나는 수없이 당신과 부딪혔지요. 그때는 분명 싫고 짜증났었는데 지금은 아닙니다. 기억은 포장되고 추억은 아름다워집니다. 나는 당신과의 모든 삶을 포장하여 마음에 담아둡니다.

내게 당신과 함께 했던 마지막 3일은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당신을 마주하고도 차마 인사드릴 용기가 없어, 나보다도 어린 동생에게 의지해 겨우 인사를 올렸지요. 아버지께서 내게 맡긴 일체의 업무가 낮의 나를 바쁘게 했지만 여지없이 조용한 새벽엔 당신 앞에서 그저 멍하니 향을 태우며 나와 당신의 삶을 이었습니다. 그 사흘을 내리 나는 그렇게 보냈습니다. 낮의 한가한 시간에 겨우 쪽잠을 자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렇게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당신께서도 많은 잠을 주무시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렇게 하나 당신과 가까워집니다. 사람들이 당신을 품에 안고 돌아오던 날. 차마 나는 안을 용기가 없어서, 유골함을 매만지는 것으로 당신과의 인사를 마쳤습니다. 우리의 짧은 20년을 나는 그렇게 마무리 하는 방법 밖에 알지 못했습니다.

이 글은 당신께 드리는 내 마지막 글입니다. 이 글을 당신께서 읽으시려면 오래 걸릴 듯합니다. 아무래도 나는 이 글을 직접 당신께 읽어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적어두면 먼 훗날에도 반드시 기억해서 읽을 수 있겠지요. 만날 수 있는 그 날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마침표를 찍으며, 나는 내 안의 슬픔이라는 감정을 이해했다. 그것은 정리할수록 명료해졌다. 그러나 나는 그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진 않았다. 나는 슬픔을 태워버릴 수는 있지만 남는 재까지 정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세월만이 재까지 정리해서 보낼 수 있는 권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기다리면 되는 일이다. 욱하는 심정에 눈물이 났다. 나는 노트북을 껐다. 어두운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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