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회 솔뫼문화상 소설 가작
상태바
제40회 솔뫼문화상 소설 가작
  • 안동대학교 신문사
  • 승인 2019.12.02 16: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영환(정보통계·14)

 

나무 자라는 소리가 들려. 정원에서 나무를 손질하던 어머니가 말했다. 발밑으로 잔가지가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내가 물었으나 어머니는 말없이 가지만 매만졌다. 바람이 들뜬 나무껍질 사이를 통과하며 둔탁한 휘파람 소리를 냈다. 햇볕을 받은 잎사귀가 잎맥을 반짝이며 흔들렸다. 어머니는 뿌듯한 얼굴로 손질된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우리 집은 도시 외곽 주택가에 있었다.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둔 집들은 모두 비슷해 보였다. 주택들은 장난감레고처럼 규칙적인 모습이었다. 주택들의 정원에는 비슷한 꽃과 나무가 있었다. 가끔 하굣길에 도보 위에 서면 어디가 우리 집인지 몰라 헤맬 때도 있었다.

친환경 에코시스템 설계로 건강에 좋은 XX주택가. 정부에서 직접 기획한 주택단지였다. 인구가 도시로 몰리자 외곽으로 주민들을 분산시키기 위해 산을 깎아 만들었다. 그러면서 약간의 나무와 꽃을 남겨 전원생활이 가능하다며 홍보했다. 친환경, 에코, 건강에 좋은. 이런 단어들은 도시에 사는 소시민들을 모이게 만들었다. 그 중에는 우리 가족도 포함이었다.

이사 온 지 반년 째였다. 부모님이 들어놓은 저축의 만기가 끝나 겨우 입주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전에 살던 주공아파트를 벗어나기 위해 빚도 감수했다. 중심가에서 떨어진 곳이었지만 우리는 조금도 불평하지 않았다. 완전히 소유한 집이 주는 안도감, 또한 이곳이 도시사람들이 선망하던 전원생활이라는 점은 큰 이자의 빚을 잊게 했다. 어머니는 우리뿐 아니라 이웃사람들도 모두 빚을 지니고 있을 거라고 했다.

매일 아침, 우리 가족은 식사를 한다. 어머니가 아침상을 차리고 아버지는 신문을 펼쳤다. 어머니가 찌개를 식탁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옆집에 꽃이 아주 잘 자란다나 봐요. 손톱만 했던 꽃봉오리가 하루아침 사이에 만개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우리 집 화단에 심어놓은 꽃들을 떠올렸다. 나중에 구경이나 가 봐요. 어머니는 찌개를 한 숟갈 입에 넣었다.

아침식사를 끝나자 아버지는 집을 나섰다. 현관문을 여니 슈만이 튀어나와 꼬리를 흔들었다. 몇 년 전부터 기른 가족이나 다름없는 개였다. 어머니가 슈만이 있는 쪽을 가리켰다. 잔디가 좀 자란 거 같아. 잔디는 슈만의 발목을 가볍게 뒤덮고 있었다. 그새 자랐나 보죠. 어머니와 나는 뺨에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일주일이 빠르게 흘러갔다.

잔디는 계속 자랐다. 어느덧 내 종아리까지 올라올 정도였다. 방학식을 하고 돌아와 보니 아버지가 잔디를 깎고 있었다. 잔디가 이렇게 빨리 자라나? 무성한 잔디들 틈에서 슈만이 뛰어다녔다. 나는 슈만과 함께 놀아주며 정원을 돌아다녔다. 정원에서는 달달한 꽃향기가 났다. 평소에는 쳐다보지도 않았던 꽃이 오늘따라 멀리서부터 눈에 띄었다.

그 꽃은 내 주먹만 했다. 꽃잎 하나하나가 잘 보였다. 잎사귀는 길게 뻗어 있었다. 나는 몇 번이고 꽃을 건드렸다. 꽃망울이 흔들려 향기가 진해졌다. 커다란 벌이 윙윙거리며 날아다녔다. 어머니는 꽃잎 몇 장을 따다가 차를 우려 점심 때 내왔다. 우리는 그 차를 마셨다.

다음 날, 주택가로 서너 명의 기자들이 찾아왔다. 기자들은 정원을 들려 꽃을 찍었다. 어머니가 호기심으로 기자들 주위를 기웃거렸다. 기자들은 어머니에게 꽃이 커지기 전의 사진은 없냐고 물었다. 그런 것은 없었다. 그날 저녁 지역 뉴스에는 XX주택가에서 하루아침에 꽃이 비정상적으로 자라나는 일이 일어났다고 보도가 났.

보도가 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정원에서 어머니가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붕대를 가지고 오라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잔디 한 가운데 있었다. 그 즈음엔 잔디가 하루만 지나도 한 뼘 이상 자랐다. 어머니 옆의 기다란 잔디들을 헤치자 피 흘리는 슈만이 있었다. 슈만의 꼬리가 바닥에 닿아 있었고 입 밖으로 밀려나온 혀는 보라색이었다. 슈만의 오른쪽 다리에서 피가 흘렀다. 어머니는 붕대를 슈만의 다리에 재빨리 감아주었다. 무슨 일이에요? 나는 슈만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우리는 무엇이 슈만을 다치게 했는지 알아낼 수 없었다.

며칠이 지나, 집안에서 치료시키던 슈만을 마당으로 풀어준 날이었다. 마당에서 슈만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나는 한참을 헤매다가 슈만을 겨우 발견할 수 있었다. 마당의 구석, 가시덤불 사이에 슈만이 뒤엉켜 있었다. 구출한 슈만은 아직 뜨거웠다. 그러나 쉭쉭대던 숨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떨리는 손으로 가시를 하나둘 뺐다.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슈만의 몸은 서서히 차가워졌다. 가시를 다 빼다가는 날을 지새워야할지 몰랐다. 슈만을 잡아먹은 가시덤불은 날카로운 가시를 내 쪽을 향해 치켜세웠다. 일찍이 정원용 가위로 가시덤불을 잘라버려야 했다는 후회가 뒤늦게 들었다. 그러면서도 의문이 들었다. 왜 갑자기 슈만이 가시덤불에 빠진 걸까?

개집이 있던 자리에 구덩이를 팠다. 구덩이 안으로 슈만을 넣었다. 슈만의 피부는 가을 낙엽처럼 습하고 차가웠다. 슈만 위로 흙을 채웠다. 해 질 무렵이 되자 메워진 구덩이는 야트막한 언덕을 그렸다. 바람이 불었다. 그 결에 가지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손바닥만한 나뭇잎 하나가 무덤 위로 내려앉았다.

얼마가 지나니 슈만의 무덤 옆에 나무가 자라 있었다. 얇은 가지가 우리 집 지붕에 닿을 것처럼 뻗어 있었다. 가지 아래로 그늘도 생겼다. 슈만의 무덤을 완전히 가리는 그늘이었다. 분명히 슈만의 무덤 근처로는 잔디밖에 없었다. 이 나무는 단 하루 만에 생긴, 이상한 식물이었다. 나무를 바라보던 어머니와 내가 동시에 뒷걸음질 쳤다. 그때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었다. 커다란 잎사귀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경고음처럼 들렸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1층에서 어머니가 다급하게 아버지와 나를 불렀다. 거의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내가 어머니 쪽으로 달려갔을 때, 나는 문득 침을 꿀꺽 삼켰다. 거실 한 가운데에 새까만 기둥이 솟아올라와 있었다. 굵직한 선의 나이테, 거친 흙냄새. 그것은 나무뿌리였다. 뒤따라온 아버지가 머뭇거리다 뿌리를 만졌다. 뿌리는 아버지의 허리만 했다. 아버지는 식칼로 뿌리를 잘라내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식칼이 튕겨나갔다.

창밖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온가족이 밖으로 나갔다. 구급차 서너 대가 맞은편 주택 앞에 몰려 있었다. 나무로 인해 왼쪽 귀퉁이 벽이 무너진 상태였다. 서너 명이 구급차에 실려 갔다. 아버지가 물었다. 누가 다쳤나요? 구급대원은 집으로 돌아가라며 아버지를 밀쳤다.

도로는 난장판이었다. 도로 위로 솟아난 뿌리 때문에 차들이 나아갈 수 없었다. 드문드문 땅 밑에서 분수처럼 물이 솟아오르는 곳도 있었다. 그 사이를 구급차 여러 대가 아슬아슬하게 오갔다. 몇몇 외에는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마을은 죽은 듯이 고요했다.

방역차가 돌아다녔다. 새하얀 연기 사이로 흰 가운을 입은 이들이 내렸다. 그들은 나무의 샘플을 채집해 갔다. 어떤 이들은 우리에게 나무에 대해 캐물었다. 어머니는 말을 더듬으며 모른다고 대답했다. 샘플을 분석한 결과는 시간이 흘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날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하루가 지날수록 나무는 더욱 빠르게 자랐다. 첫날에는 벌목차가 여러 대 와서 나무들을 베어냈다. 하지만 그 다음날이면 벤 자리로 더 큰 나무가 자라 있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고 나니 더 이상 벌목차도 오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집안에 남아 있었다. 어머니가 떠나자고 하자 아버지는 주먹을 쥐었다. 출근조차 못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도 당장 갈 곳이 마땅치 않은 것 같았다.

집집마다 편지가 도착했다. 정부로부터 온 것이었다. 정부는 도시에 남아 나무를 베면 지원금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기둥이 아니라 가지여도 상관은 없었다. 나무를 줄이는 목적도 있었지만 연구용 샘플 채취가 주목적이라고 했다. 나무 자라는 속도가 너무 빨라 차량이나 기계는 주택가로 진입할 수 없다고 한다. 다양한 종류의 나무를 베어올수록 인센티브를 제공한다고도 했다. 대가로 주어지는 돈의 액수는 상당했다. 하루 종일 그 편지는 동네주민들 사이에서 큰 논란을 일으켰다. 아버지는 그 편지를 몇 번이고 읽었다.

주택가에 공구를 실은 수레가 나타났다. 나무를 벨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마을사람들이 몰려와 공구를 가져갔다. 전기가 언제 끊길지 모르므로 기계는 쓸 수 없었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도끼 세 자루를 가져왔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도끼를 나눠주었다. 어머니는 피난을 가자고 했지만, 아버지는 묵묵히 도끼를 들었다. 마을을 살려보자고 말하는 한편 이 참에 가진 빚을 모두 청산해버리고 싶은 듯 했다. 어머니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도끼를 건네받았다.

우리는 정원으로 나왔다. 정원은 원래의 모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나무는 계속해서 가지를 키웠다. 가지들은 사람이 지나다니기 힘들 만큼 공간을 채워나갔다. 솟아오른 뿌리는 가지가 가득 뒤얽힌 구덩이 같았다. 담쟁이덩굴은 뿌리를 타고 올라가 손바닥 같은 잎사귀를 가득 피워냈다. 하나라도 잘못 건드리면 쏟아질 것처럼, 정원은 나무로 가득 찼다.

아버지가 담쟁이덩굴을 베어냈다. 어머니와 나는 가지를 베어냈다. 그러나 나무들의 생명력은 단단했다. 칼질을 수십 번을 해야 얇은 가지를 겨우 베어낼 수 있었다. 날이 어둑해지자 잘린 가지들이 조금 쌓였다. 아버지가 노끈을 가져와 가지들을 한 데 묶었다. 묶음을 현관 앞에 두었다. 나무가 너무 단단해 하루에 한 묶음이 고작이었다.

도끼를 내려놓고 쉬는 사이, 이웃이 다녀갔다. 동네에는 온갖 소문이 돌았다. 어느 집에 허벅지 굵기의 뱀이 나타났다거나 누군가 엄청난 꽃향기에 질식했다는 것들이었다. 나무를 만지면 전염병이 걸린다는 소문도 있었다. 무섭지 않니? 어머니가 몸을 움츠리며 말했다. 그런 거 다 뜬소문이야. 아버지는 묵묵히 나무만 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끔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떠나자고 애원했고 아버지는 고개를 저으며 버텼다. 아버지가 묵묵히 도끼질을 시작하면 어머니는 고함을 지르며 말했다. 벽에 귀를 대고 있으면 나무 자라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탁탁 혹은 쾅, 무언가가 터지는 것 같은 소리라고 했다. 얼른 나무를 모으고 떠나면 돼. 아버지가 도끼를 들어올렸다.

지붕 위로 가지가 내려앉았다. 천장이 조금 부서지면서 금이 갔다. 그 구멍을 따라 벌레들이 집안으로 들어왔다. 엄지손톱만한 개미가 행렬을 지으며 바닥을 지나갔다. 주먹 크기의 사슴벌레가 날갯짓을 하며 뿌리에 달라붙었다. 아무리 해충제를 뿌려도 곤충들은 죽지 않았다. 우리들은 집안에서 신발을 신고 다녔다. 걸을 때마다 신발 바닥에서 벌레가 터졌다.

잘라낸 가지가 현관 앞에 쌓였다. 묶음은 대여섯 개 정도 되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이젠 먹을 것도 떨어져 가는데 제발 떠나요. 수십 번 해온 질문이었다. 나도 더 이상은 견디기 힘들었기에 어머니의 말에 동조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고개를 내저으며 도끼를 들었다. 조금만 더 하면 빚을 모두 갚을 수 있어. 아버지는 나무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다. 장애물처럼 늘어선 뿌리를 피해갔다. 한 발자국 뗄 때마다 아버지의 그림자가 나무에 섞여 들었다. 이윽고 아버지는 사라졌다. 그 모습은 마치 나무가 아버지를 삼키는 것 같았다.

그때, 노끈이 갑자기 풀리며 나뭇가지가 바닥으로 쏟아졌다. 우리 근처에 쌓아놓은 묶음 중 하나였다. 잘린 나뭇가지가 발목에 닿자 아버지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어머니가 물러섰다. 내가 노끈을 들고 나뭇가지들을 다시 묶으려고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그 속에 숨어 있던 매미가 튀어 나왔다. 매미는 현관문에 달라붙어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침이 되면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우리는 하루 종일 정원에 나가 있었다. 나뭇가지가 기다랗게 자라 하늘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가지는 베어낼수록 오히려 자랐다. 하늘을 가리는 가지들은 나날이 많아졌다.

아버지가 사라지고 나서부터 아침이 오지 않았다. 나뭇가지들은 이제 하늘을 빠짐없이 메웠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는 나무에게 완전히 포위된 셈이었다. 거기에는 어떠한 경고장도 존재하지 않았다. 화장실을 다녀온 뒤에도, 손전등을 찾으러 다니는 동안도 어머니는 아버지가 왔느냐고 수시로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손전등을 켰다. 손전등은 몇 번 불을 내다가 건전지가 다했는지 곧 꺼졌다. 집안에 건전지는 더 이상 없었다. 한없이 어두워지는 정원에서 나무를 바라보며 우리는 아버지를 기다렸다.

어느덧 어머니는 안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며칠간 아버지를 기다리느라 잠을 자지 못한 탓인 것 같았다. 집은 부서져 내렸다. 벽에 난 구멍으로 나뭇가지가 끊임없이 들어왔다. 온 집안에 얇은 가지들이 거미줄처럼 가득 늘어섰다. 나는 거실에 가만히 앉아 목을 만지작거렸다. 발진이 일어나 있었다. 긁으면 따가웠다.

그때, 거실 귀퉁이에 있던 무언가가 흔들렸다. 나무뿌리였다. 뿌리는 서서히 두꺼워지고 있었다. 다른 무엇의 생기를 흡수하듯 엄청난 속도였다. 팔뚝만 했던 뿌리는 이제 내 허벅지보다 조금 커졌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도끼를 주웠다. 도끼로 있는 힘껏 뿌리를 내리쳤다. ! 금속성이 울리고 도끼가 튕겨나갔다. 한 번 더 내리쳤다. 어느덧 뿌리에 생채기가 생겼다. 쓰러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생채기를 노려보았다.

생채기는 더 이상 커지지 않았다. 가지들은 내가 보는 앞에서 길이를 늘려 빈 공간을 메웠다. 뿌리에서 진갈색의 수액이 흘러 바닥을 적셨다. 나는 거실에 주저앉았다가 고개를 들었다. 뿌리가 커질 때마다 벽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집이 무너질 것 같았다.

어머니는 안방의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어머니의 눈 밑이 퀭했다. 나는 어머니의 어깨를 흔들었다. 침대 앞에 있던 가지가 꿈틀거렸다. 나는 어머니의 손을 꽉 잡았다. 나가야 해요. 다급한 내 말에 어머니가 몸을 반쯤 일으켰다. 우리는 집밖으로 달렸다.

한 발자국만 움직여도 가지가 발목을 찔렀다. 어떤 나무기둥은 한 아름보다 커서 벽 같았다. 정원에 사람이 지나갈 만한 공간은 없었다. 나는 도끼로 잔가지를 쳐내고 길을 만들었다. 한 발자국 내딛기 위해서는 서너 개의 가지를 잘라야 했다. 어머니는 넋이 나간 듯 멍하니 서 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도로는 사라지고 없었다. 바닥에 떨어진 아스팔트 조각을 발견하고 나서야 이곳이 도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뒤를 돌아보았다. 집집마다 정원은 나무로 포화였고 마을은 적막하기만 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우리 집을 바라보았다. 수천 개의 가지가 집을 감싸고 파고들었다. 그것들은 우리 집을 감싸 안다가 이윽고 파괴시킬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그들 대다수는 아버지와 생각이 같았다. 돈을 벌기 위해 이곳에 남기로 한 것이었다. 우리는 계속 걸었다. 그때 근처에 있던 나뭇가지가 흔들렸다. 뒤로 살짝 물러났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서 누군가 튀어나왔다. 등에 커다란 가방을 멘 이웃들이었다. 우리는 눈인사를 했다. 이웃이 물었다. 왜 아직까지 남아 있으세요? 어머니가 나를 밀치고 입을 열었다. 혹시 저희 남편 보셨나요. 이웃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람이 실종되는 일은 이젠 흔해요. 어서 떠나세요. 우리도 언제 잡아먹힐지 몰라요. 그러면서 이웃은 술렁이는 나무 사이를 가리켰다.

저 쪽, 정부가 마을의 경계에 대피소를 세웠다. 마을사람들은 모두 그곳으로 몰려갔다고 했다. 그 소식을 들으면서도 묘하게 아까 이웃이 한 말이 귓가를 아른거렸다. 나무가 사람을 잡아먹는다. 어머니를 부축하던 나는 대피소로 향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우리는 나무 아래를 걸었다. 기둥과 줄기 사이로 나는 간신히 몸을 비집고 들어갔다. 뒤를 따라 어머니가 발을 내밀었다. 그새 많이 야윈 어머니는 나보다 훨씬 수월하게 빠져나왔다. 몸을 일으키려다 내 상의 소매가 나뭇가지에 걸렸다. 옷이 찢어졌다.

손등에 커다란 날개를 가진 나방이 붙었다. 나방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냈다. 손등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나방은 다른 곳으로 날아갔다. 나방이 날갯짓할 때마다 녹회색 가루가 떨어졌다. 어머니와 나는 나방이 멀리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는 한숨을 쉬었다.

땀이 줄줄 흘렀다. 습기 때문에 옷이 피부에 달라붙었다. 웃옷을 손으로 펄럭이며 걸었으나 조금도 시원하지 않았다. 걸어갈수록 바닥이 질퍽해지고 있었다. 발을 한 번 내딛으면 신발이 진흙에 달라붙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발에 힘을 잔뜩 주어야 했다.

어머니가 비명을 질렀다. 나는 어머니의 어깨를 잡아 내 쪽으로 잡아끌었다. 어머니의 앞에는 땅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갈라져 있었다. 사람 하나는 쉽게 빠질 것 같은 구멍이었다. 구멍은 나무가 설치해놓은 덫처럼 느껴졌다. 나는 어머니를 이끌고 그곳을 얼른 벗어났다. 어머니가 내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맞잡은 어머니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네 아빠는 어딘가 살아있을 거야. 나는 고개를 숙이고 땅을 보면서 걸었다.

아무리 걸어도 대피소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리가 뻐근해졌다. 바닥은 늪처럼 질퍽해진 상태였다. 진흙 위로 썩은 나뭇잎들이 쌓이고 쌓여 하나의 층을 이뤘다. 그 위에는 어지간한 산짐승보다 큰 열매가 터져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안에서 손가락만한 구더기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우리는 배가 고프고 목이 말랐다. 하지만 아무것도 먹을 게 없었다.

길을 가던 중, 우리는 유독 기다란 나뭇가지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새하얀 천 조각이었다. 근처로 조각들이 몇 개 더 있었다. 길바닥에서 뭉툭한 물체를 밟았다. 나무막대기였다. 막대기 끄트머리에 누군가 도끼로 잘라낸 흔적이 있었다. 어머니가 내 손을 잡아당겼다. 발밑으로 방충망이 떨어져 있었다. 그 옆으로 누군가 잘라낸 듯한 나뭇가지들이 수북했다. 대피소가 있던 자리였을까. 조금 더 뒤적거리니 나무 뒤편에 텐트가 버려져 있었다.

텐트 안은 제법 널찍했다. 그러나 장비가 부족해 어딘가 엉성한 텐트였다. 한쪽 부분이 찢겨져 있었다. 나는 그곳에 어머니를 눕혔다. 어머니가 눈을 감았다. 나도 눈을 감았다. 등이 무척 간지러웠다. 등을 긁었다. 등에도 두드러기가 생긴 것 같았다.

적막 속에서 수풀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누군가의 발이 진흙에서 붙었다가 떨어지는 것 같았다. 사람일까. 몸을 반쯤 일으켰다. 텐트 바깥으로 살짝 얼굴을 내밀어 바깥을 살폈다. 아무것도 없었다. 동물이었을지도 몰랐다.

다음 날, 텐트로 가지가 밀려들어왔다. 눈을 뜨고 가지를 바라보았다. 눈앞에서 가지는 곁가지를 만들어내며 자라고 있었다. 어머니와 함께 다급히 텐트를 벗어났다. 가지는 곧 텐트의 내부를 이리저리 찢었다. 가지는 한없이 자라다가 어느 순간 멈췄다.

이른 아침의 나무들은 안개에 둘러싸여 있었다. 나뭇잎에 큼직한 이슬이 맺혀 있었다. 이슬을 받아먹으려던 순간, 옆에 있던 큼지막한 새가 날아올랐다. 까마귀 같기도 했고 참새 같기도 했다. 아이의 몸집만한 새가 가지를 뚫고 날아오르자 장대비처럼 차가운 이슬이 떨어졌다. 우리는 흠뻑 젖어버렸다.

어머니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나는 어머니의 목에서 여드름 같은 두드러기를 발견했다. 따갑지 않아요?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내 얼굴을 어루만졌다. 얼굴에 무언가가 잔뜩 나 있었다. 만져보니 오돌토돌했다. 등에 나 있던 두드러기가 얼굴로 옮겨간 것 같았다.

벌레가 기다랗게 울었다. 손등만한 날벌레의 울음소리는 몸집만큼이나 컸다. 어머니와 한참을 걷던 나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다. 나 있는 길을 따라 걸으면 날벌레의 울음소리가 멀어지는 듯하다가도 다시 가까워지는 것이었다. 혹시나 해서 벌레가 붙어 있는 나무에 도끼로 표식을 그었다. 그 뒤 한참을 길을 따라 걸었다. 얼마 후, 우리는 표식을 그었던 나무 앞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우리는 나무들 사이에 갇혔다. 어머니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무들은 우리 쪽으로 곧 덮쳐올 것처럼 흔들렸다. 기분 나쁜 습기를 흘렸고, 가지가 날카롭게 흔들리는 소리도 났다. 이윽고 나무들이 우리를 잡아먹을 것이다. 아버지한테 그랬던 것처럼.

나는 가지를 베기 시작했다. 가장 만만해 보이는 나뭇가지 앞에서 도끼를 높이 들어올렸다. , . 아무리 도끼를 쥐어줘도 어머니는 나무를 자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나무는 어쩌면 절대적인 존재가 된 건지도 몰랐다. 결단코 저항할 수 없는 그런 존재가.

어떤 나무에서는 베는 순간 수액이 뚝뚝 떨어졌다. 끈적끈적했다. 날벌레들이 수액을 향해 몰려들었다. 손가락만한 개미떼도 달려들었다. 그곳을 피하기 위해 다른 가지에 도끼를 들이댔다. 하지만 그 가지에서도 수액이 떨어져 벌레들이 몰려들었다. 벌레들은 곧 우리를 감쌌다. 나는 도끼로 벌레를 내리찍었다. 벌레가 터지며 진액이 이리저리 튀었다.

가지를 잘라내면서 우리는 조금씩 그 자리를 벗어나고 있었다. 문득 어느 정도 공간을 만들어냈는데 그때 어머니가 바닥을 가리켰다. 발자국이었다. 우리의 앞으로 발자국이 한 방향으로 나 있었다. 진흙 위 발자국은 오래 된 것처럼 보이는데도 딱딱하게 굳어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우리는 발자국을 따라 나뭇가지를 잘라내며 길을 만들며 나아갔다.

누구든지 상관없었다. 발자국을 따라 걷는 어머니의 눈이 번뜩였다. 어머니는 발자국의 주인이 아버지일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리라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우리는 달리다시피 걸었다. 바닥으로 잘린 가지가 떨어져 있었다. 누군가 나무를 베면서 길을 뚫은 것이었다. 이 길을 따라가면 어쩌면 숲을 탈출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우리의 앞으로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이 나무는 집 한 채보다도 커다란 크기였다. 너무 거대하다보니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어쩐지 심장이 빠르게 뛰었고 손에 땀이 났다. 상대할 수 없는 맹수를 마주한 것처럼. 발자국은 이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는 나무 앞에서 끊겨 있었다. 내 손을 꽉 붙잡은 어머니가 숨을 헐떡였다. 발자국의 주인은 어디로 간 것일까. 혹시 이 나무가 잡아먹은 것은 아닐까. 거대한 나무의 가지가 꿈틀거렸다. 가지는 서서히 자랐다. 마치 우리도 잡아먹으려는 것처럼 나무는 가지를 우리 쪽으로 뻗었다.

되돌아간다 해도 대피소가 나올리는 없었다. 아까 텐트가 버려진 그곳이 대피소의 자리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으나 어디로 가야할지 몰랐다. 이제 다 틀렸어. 목에 난 두드러기에서 진물이 흘렀다. 얼굴에서 땀이 가득 흘러내렸다. 나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앉은 자리로 무언가 두툼한 것이 느껴졌다. 나무뿌리였다. 뿌리 위에 앉으니 마치 나무와 내 몸이 하나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도끼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도끼가 진흙 속에 꽂혔다. 바람결에 가지가 스산하게 흔들렸다.

무릎에 고개를 파묻었을 때, 어머니가 내 손을 놓았다. 지금껏 놓지 않던 손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와 동시에 툭,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의 도끼가 가지에 꽂혔다. 어머니가 도끼를 빼냈다. , . 날벌레 우는 소리 위로 도끼질 소리가 퍼졌다. , 도끼질 소리만이 남았다. 나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뭐하시는 거예요. 어머니가 대답했다. 길을 만들어야지. 어머니의 도끼가 가지 하나를 베었다. 네 아버지도 어디선가 이러고 있을 거야. 시간이 지나니 가지가 있었던 자리로 빈 공간이 생겼다. 사람 하나 빠져나갈 정도는 되어보였다. 어머니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자.

땅에 꽂힌 도끼를 빼냈다. 도끼자루가 묵직하고 단단했다. 우리는 앞을 향해 나아가다가 또다시 나무 앞에 가로막혔다. 우리를 덮칠 듯 가지를 늘어뜨린 나무는 견고했다. 나는 가지 하나를 베었다. 발밑으로 쌓이는 가지가 많아질수록 나무에게 틈이 생겼다. 나는 도끼를 들어올렸다. , . 일정한 소리가 나무 사이를 메웠다. 나는 도끼의 손잡이를 꽉 쥐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