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회 솔뫼문화상 소설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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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회 솔뫼문화상 소설 당선
  • 안동대학교 신문사
  • 승인 2019.12.02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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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니

안재윤(경영·18)

 

나는 멍하니 눈을 뜬 채 젖혀지는 의자에 몸을 맡겼다. 새하얀 빛이 눈동자 위로 쏟아진다. 백내장에 걸린 것처럼 눈동자가 온통 새하얗다. , 해보세요. 나는 앵무새처럼 아, 의사의 말을 따라하며 입을 벌린다. 입술 사이의 간격이 넓어질수록 시야는 반대로 점점 더 좁아진다, 좁아지다가, 완전히 닫혀버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칠흑의 세상. 혓바닥 위에는 치과 특유의 긴장감이 흥건하게 고인다.

교정기가 빠졌네요.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에요?”

의사는 차가운 쇠붙이로 입 안 여기저기를 건드리다가 손가락을 빼며 묻는다. 의자의 등받이가 올라가고, 덩달아 내 몸도 서서히 일으켜진다. 나는 물이 가득 채워진 컵을 들고 입가로 가져간 후 입 안에 물을 머금었다. 미지근한 물이 기분 나쁘게 입 안에 차오르고 나는 잔뜩 고였던 긴장감과 함께 물을 뱉어냈다.

밥 먹다가 빠졌어요.”

밥 먹다가요? 의사는 미소 지으며 말한다.

학생이 와이어 교체시기를 놓치셔서 와이어가 느슨해져서 그래요. 그러니까 앞으로는 제 때 제 때 오셔야 해요.”

의자가 다시 뒤쪽으로 젖히고, 나는 엉덩이를 바짝 당겨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 의사는 다시 말하고, 나는 입을 크게 벌리며 아소리를 낸다.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이 옆에 서있던 간호사가 손에 든 주사기를 내 입 안에 밀어 넣는다. 씁쓸한, 혹은 시큼한 액체가 혓바닥에 두어 방울 떨어진다. 의사는 쇠붙이로 앞니를 몇 번 긁는 중인 것 같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파요? 나는 고개를 젓는다. 의사는 손에 들고 있던 철사를 입 안으로 밀어 넣는다. 마취를 했는데도 어렴풋이 치아가 당겨지는 느낌이 든다. 기어코 아버지가 다시 입 안에 들어왔다. 조금, 아니 꽤 아프다.

 

나는 아, 치과에 온 것처럼 입을 크게 벌렸다. 숟가락 가득 담겨진 밥알들이 입으로 들어왔다.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젓가락을 들어 무김치를 집어 들고 한 입 베어 물었다. 거의 익지 않은 단단한 무김치가 써걱, 하는 소리를 내며 두 동강 났다. 밋밋하던 입 안에 매운맛과 짠맛이 조금 느껴졌다. 한참을 씹어 삼키고 있는데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밥알과 무김치가 혓바닥에 닿는 사이사이에 차갑고 기분 나쁜 것이 닿았다. 나는 그것을 꺼내기 위해 입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그때 현관문이 요란하게 열리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누나가 들어왔다. 땀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액체 때문에 화장이 흉측하게 번진 누나의 얼굴을 보자 밥맛이 싹 달아났다. 왜 그래? 나는 입 안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혓바닥에 걸리는 알 수 없는 물건을 빼내며 누나에게 물었다. 아빠가, 아버지가. 나는 손가락을 입 안에서 빼냈다. 교정기와 느슨해진 와이어에 새빨간 김치 양념이 잔뜩 묻어 있었다.

돌아가셨대.

 

아버지는 교정기 같은 사람이었다. 툭 튀어나온 덧니나 잘못 배열된 치아를 바로잡기 위해 만들어진 교정기. 아버지는 자신이 보기에 거슬리는 것은 무엇이던 교정하려고 하셨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은, 아니 나는, 아버지가 보기에 세상에서 가장 거슬리는 덧니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가난했던 집안 형편 탓에 어머니는 조산원에서 나를 낳으려고 하셨다. 나를 낳기 위해서는 수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 있었다. 산모냐 아이냐. 뻔하고 진부한 선택의 기로에서 어머니는 나를 낳는 내내 비명을 내질렀고, 아버지는 귀를 틀어막은 채 분만실 문 앞에서 나의 울음소리와 어머니의 비명소리를 차단했으며, 그리고 나는, 태어났다. 어째서 아버지가 나를 선택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아버지에게 있어 나는 그저 아내를 앗아간 존재일 뿐이었다. 쓸데없이 잘못 나고 자란 성가신 덧니였다.

그래도 나는 아버지가 좋았다. 아버지가 만들던 영화도 좋았다. 어릴 적 아버지의 목소리는 언제나 갈변된 나뭇잎처럼 잔뜩 낡아 있었다. ! 나는 아버지의 옆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다가 확성기 특유의 찢어지는 괴성에 눈을 번쩍 떴다. 아버지는 매서운 눈으로 배우들을 노려보고 있었고, 그런 아버지의 시선 앞에서 영화 속 무적의 주인공과 잔혹한 악당두목은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다. 지금 그걸 연기라고 하냐? 아버지의 물음에 배우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다시! 액션! 아버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배우들은 아버지에게 들은 핀잔에 대한 화풀이를 하듯 서로를 노려보았다. 아버지는 배우들보다 더 사나운 눈초리로 여전히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영화 속 화려한 액션은 어린 날의 나에게 있어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 못지않은 영웅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영화를 버렸다. 영화를 찍기 보다는, 사람들의 시선을 카메라 속 필름에 고정시키는 일에만 몰두했다. 아버지는 내가 동경하던 모든 것을 앗아갔다. 아버지의 영화도, 그 속의 액션도, 그리고 아버지 자신도.

계속되는 흥행참패에 투자자들과 세상은 아버지를 외면했고 아버지는 여전히 어머니를 죽게 만든 나를 외면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나는 텅 빈 극장에 누나와 단 둘이 앉아 아버지의 영화를 보았다. 언제나 화려한 액션이 펼쳐졌던 커다란 스크린 위에는 여배우와 남배우의 진한 입맞춤이 그림자처럼 영사기에서 쏟아지는 빛의 갈무리에 드리우고 있었다. 나는 팝콘을 한 주먹 집어 들고 입으로 가져갔다. 아버지는 집에서 또 혼자 술을 먹고 있을 터였다. 부어오른 볼이 팝콘을 씹을 때마다 덩달아 씹히는 기분이다. 어제는 아버지가 유난히 심하게 취했었고, 그래서 유난히 심하게 맞았어야 했다. 아버지는 나를 때릴 때면 언제나 울었다. 그래서 술을 마실 때면 언제나 흐느끼셨다. 나는 아버지가 우는 게 싫어서 종종 아버지가 마시는 술을 숨기거나 버렸고 그러면 아버지는 또 나를 때린 후 소리 없이 울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혹은 닭과 달걀의 관계처럼 어디가 시작인지 알 수 없는 끝없는 순환의 고리였다. 아버지의 영화가 변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무렵의 일이었다. 키스를 끝낸 스크린 속 배우들은 난데없는 이별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나는 잘게 조각난 팝콘을 침에 섞어 꿀꺽 삼켰다. 입 안에는 교정기처럼 꺼끌꺼끌 거슬리는 팝콘 알맹이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죽을 리 없던 주인공을 자기 마음대로 교정하던 아버지였지만, 결국 주인공이 될 수는 없었다. 그 죽음은 아버지답지 않았다. 세트장에 작은 균열이 있었나봅니다. 그래서 세트장이 무너져서……. 나는 우물쭈물 말하는 조감독과 구석에서 고스톱을 치고 있는 촬영팀을 번갈아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촬영장에 균열, 이라는 것은 평소 아버지의 성격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조감독은 무슨 죄를 지은 사람처럼 연신 고개를 꾸벅 숙이며 죄송하다고 말한 후 몸을 움직여 고스톱 대열에 합류했다. 나는 그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왜 감독님은 점심시간에 혼자 세트장에 남아 계셨데요? 그리고 한꺼번에 무너져 내린 것도 아니고,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지 않았……, 아싸, 고도리! 났어, 났어!”

집에도 몇 번인가 찾아온 적 있던 카메라감독이었다. 깐깐하고 사람에게 정을 잘 두지 않는 아버지가 유독 아끼던 사람이었다. 술이 좀 취한 듯 볼이 붉어진 그는 고! 라고 크게 외친 후 하던 말을 이었다.

아무튼 안 됐어요, 안 됐는데, 뭐 별 수 있나. 솔직히 그 분이랑 일하기 좀 힘들긴 했어요, 사람이 좀 깐깐해야지. 삼류영화 하나 찍는데 뭐 그렇게 깐깐하게 굴어, 사람이.”

, 그만해.”

조감독이 카메라감독에게 눈치를 주며 말했다. 뭐 어때요! 카메라감독은 계속 고, 하고 외쳤다. 도대체가 스톱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영정을 바라보았다. 옅게 미소 지은 아버지의 입가에는 툭 튀어나온 덧니 하나만 어렴풋이 보였다.

 

치과를 나선다.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은 과연 파랬던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새하얗게 물들어 있다. 서서히 마취가 풀려가면서 점점 더 심해지는 통증이 침처럼 입 안을 흥건하게 적신다. 나는 통증을 참으며 한참을 걸어 집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자 낯익은 침묵이 기다렸다는 듯 튀어나와 나를 반긴다. 아무도, 또 아무것도 없는 집은, 그래서 어둠처럼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진다. 거실에 들어선다. 소파위에 놓인 비디오테이프가 눈에 들어온다. 나는 그것을 주워든 후 다시 아까처럼 조금 망설이다가 시선을 움직여 작동하지 않은지 제법 오래 된 고물 비디오플레이어를 곁눈질 해본다. 문득 나는 누나 방 책상 밑에 놓여 있을 비디오카메라를 떠올린다. 누나는 아직 집에 오지 않았다. 나는 몸을 돌려 누나방의 문고리를 잡았다. 손에 힘을 줄수록 지문의 결을 따라 찬 기운이 감돈다. 손은 스케일링한 치아처럼 시리고, 방문은 꽤 무겁다.

마지막으로 들어온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누나의 방은 과연 누나답게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나는 고개를 움직여 천천히 방을 둘러본다. 벽에 비해 조금 크다싶은 창문으로 구름이 채 가리지 못한 날빛이 새어든다. 날빛은 구름을 지나며 흰색으로 조금 물들어 있었다. 침대, 화장대, 책상, 책꽂이.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책꽂이에 다가선다. 치아교정, 치아위생학, 입문의학, 그리고…… 영화학개론. 나는 영화학개론이라고 적힌 부분을 한참동안 노려보다가 시선을 거두고 책상으로 다가간다. 책상 밑으로 손을 찔러 넣어 비디오카메라를 꺼내든다. 마지막으로 사용한 게 제법 오래전일 텐데도, 꺼내든 카메라는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하다. 나는 카메라의 전원을 켠 후 테이프를 넣었다. 테이프는 위이이잉,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자동으로 재생된다. 곧 액션, 소리와 함께 작은 화면 위에 아버지가 나타난다.

 

아버지의 주치의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것은 오늘 아침의 일이었다. 나는 컴퓨터를 하던 중 부서질 듯 요란하게 울어대는 전화기를 신경질적으로 거칠게 낚아채 귀에 가져다댔다. 대학병원입니다. 혹시 이호용님 되십니까?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처음으로 들어보는 아버지의 이름이 낯설게 느껴져 한참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이호용님 아니십니까? 의사는 기다리다 못해 다시 한 번 물어왔고 아들입니다, 나는 짧게 대답했다.

-아드님 되십니까? 아버님 검진일자가 지났는데 왜 안 오시죠?

의사는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얼마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의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렇습니까. 결국은 돌아가셨군요. 나는 귓가에 겉도는 결국은이라는 말에 주목했다. 결국은이요? 아버지가 돌아가실 걸 알고 계셨습니까?

-말씀 못 들으셨습니까? 아버님께서는 폐암말기셨습니다.

전혀 몰랐던 사실을 생판 남에게 들으니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나는 의사와의 통화 후 전화기를 내려놓고 교정기가 빠져버린 입 안에 혀를 굴려보았다. 허전함이 입 안을 가득 메운 채 침처럼 힘없이 흐르며 혀를 따라 굴렀다.

나는 인터넷 검색창에 이, , 용을 타이핑한 후 검색버튼을 눌렀다. 아버지의 영정사진으로 쓰였던 사진이 인터넷 프로필 사진으로 화면에 떴다. 나는 아버지의 이름 옆에 조그맣고 연한 글씨로 써진 영화감독이라는 글자를 노려보았다. 영화감독. 아버지의 영화는 그 글씨만큼이나 작고 연했던가. 나는 아래쪽에 나열된 아버지의 작품들을 쳐다보다가, 그 중 가장 최근에 개봉했던 작품의 포스터를 눌러 보았다.

 

이번 영화는 자신 있어! 아버지는 카메라감독과 조감독을 집으로 불러들여 말했다. 세 명이서 마셨다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양의 술병들이 바다 위를 떠도는 뿌리 없는 섬처럼 거실바닥을 뒹굴었다. 이번 영화는 최고라구! 아버지는 연거푸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럼요, 그럼요, 감독님 영화는 언제나 최고였죠. 카메라감독이 말했다. 자네가 뭘 좀 아는군! 그래, 내 영화는 언제나 최고였어!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며 카메라감독의 빈 잔에 술을 부었다. 투명하고 작은 술잔에 콸콸콸, 못지않은 투명한 액체가 가득 채워졌다.

액체처럼 홀연히 증발해버린 그 영화에는 3점이라는 점수가 매겨져있었다. 아버지가 자신 있다고 소리치던 영화는 그러니까, 3점짜리 영화였다. 아버지는 고작 3점짜리 영화의 감독이었다. 그러면, 그러면 아버지는 나에게도 고작 3점짜리 아버지였나? 문득 아버지답지 않은 아버지의 죽음이 신경 쓰인다. 어째서 아버지는 평소와 달리 그 작은 균열을 발견하지 못하셨을까? 왜 아버지는 남들 다 밥 먹으러 간 그 시간에 혼자 세트장에 남아 있었을까? 왜 아버지는, . 무너지는 세트장을 빠져나오지 않았을까? 문득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유품이 떠올랐다. 장례식장에서 촬영팀들이 내게 건넨 비디오테이프였다. 나는 아버지의 방에 쌓아둔 상자들을 뒤져 테이프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문득 시계를 바라봤다. 치과 예약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제 저녁에 빠져버린 교정기를 다시 끼워야만 했다. 나는 소파위에 비디오테이프를 두고 집을 나섰다. 교정기 없는 입 안이 조금 시큰하게 느껴졌다.

 

화면 속 아버지는 작은 화면 탓인지 유난히 작아 보인다. 아버지의 컷 사인이 떨어진 후 사람들은 하나 둘 세트를 빠져 나간다. 감독님, 점심 뭐 드실래요? 스톱을 모르던 카메라감독과 조감독이 아버지에게 다가가며 물었지만 아버지는 대답 없이 고개를 젓는다. 끝까지 남아 아버지를 기다리던 카메라감독과 조감독마저 결국엔 나가버리고, 아버지는 다급하게 주머니를 뒤져 약 한 봉지를 꺼내 입에 털어넣는다. 다급함에 쫓겨 상당히 재빠른 동작이지만 한번 움직일 때마다 표정을 찡그릴 만큼 힘겨워 보인다. 물도 없이 한 주먹이나 되는 약을 모두 삼킨 아버지는 거칠었던 호흡을 조금씩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때, 세트로 썼던 건물이 뒤쪽에서부터 조금씩 무너져 내린다. 아버지는 당황한 듯 건물이 무너지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며 겁에 질린 듯 주저앉는다. 그러나 이내 다시 몸을 일으킨 아버지는 입구를 향해 몸을 움직이려다가 카메라 쪽으로 시선을 옮긴다. 시체처럼 축 늘어진 힘없는 시선. 아버지는 카메라를 향해 다가오며 중얼거린다. 찍히면 안 되는데……. 아버지는 손을 뻗어 카메라의 렌즈부분을 움켜쥔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세트는 치과의사 앞에 앉은 환자처럼 아, 크게 입을 벌려 아버지를 집어 삼켜버린다. 카메라는 땅바닥에 거칠게 떨어지고, 화면은 아버지의 시간처럼 거기서 멈췄다. 아무것도 없어서 아무것도 아닌, 어둠이 끝없이 화면 위에 드리운다.

아버지답지 않은 죽음이라니……, 모든 것은 내 오해였다. 아버지는 목숨과 자존심을 맞바꿨다. 그것은 실로 아버지다운 죽음이었다. 나는 누나의 방문을 힘주어 열고 나온다. 문은 변함없이 무겁고, 문고리는 똑같이 차갑다. 손이 시리고, 이도 시리다. 오늘 새로 교정한 치아가 너무 아파서, 죽을 것만 같다.

 

저녁을 먹은 후 환의 전화를 받는다.

-너네 집 앞에 공터 있지? 거기 있으니까 나와.

알았어, 바로 나갈게.”

나는 두꺼운 외투를 챙겨 입은 후 시계를 본다. 저녁 여덟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누나의 귀가시간은 점점 더 늦어지고 있다. 나는 현관으로 다가가 문을 열어본다. 아귀가 잘 맞지 않는 문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굳게 닫혀있던 몸을 치과의 의자처럼 젖힌다.

공터에 도착한 나는 어렵지 않게 환을 찾아냈다. 학교에 가는 날도 아닌데 군청색 교복 마이를 입고 있다. 환 말고도 그와 어울려 다니는 두 녀석이 더 있었다. 모두 군청색 교복 마이를 입고 있었다. 나는 입고 있는 두꺼운 외투가 수치스럽게 느껴져 외투의 단추를 끝까지 채운다. 왔냐? 환은 턱 끝으로 가로등 하나 없는 공터의 가장 구석진 곳을 가리킨다. 그 끝에는 하얀 바탕에 붉은 줄이 빗금처럼 그어진 스쿠터 한 대가 주차되어 있다. ? 내 물음에 환은 인상을 쓰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스쿠터로 다가가 주머니를 뒤져 옷핀을 꺼내 들고 스쿠터의 열쇠구멍에 끼워 넣는다. 옷핀을 이리저리 돌리며 열쇠구멍 속을 난자하자 조금 낡은 듯한 스쿠터는 뒤꽁무니로 검회색의 매연을 침처럼 뱉어낸다. 나는 스쿠터를 따라 구석을 향해 침을 한 번 뱉는다. 침은 교정기 때문에 턱으로 조금 흘러내렸다.

역시 딸키는 우리 중에 네가 제일 잘 하네. 담배 있냐? 스쿠터를 끌고 온 내게 환이 말한다. 나는 주머니를 뒤져 담뱃갑을 꺼내들고, 한 가치를 환에게 건넨 후 하나를 더 꺼내 입에 문다. 환은 라이터를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 불을 붙인 후 내 쪽에도 불을 붙여줬다. 조그맣게 피어오르던 불꽃은 맹렬하게 담배의 필터를 태운 후, 담배의 끝자락에서 훨씬 더 조그맣게 타오른다. 연기가 조금 피어올라 바람 부는 방향으로 흩어진다. 환과 나는 깊게 호흡한 후 입으로 연기를 뱉어냈다. 일순간 바람이 멈추고, 두 연기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흩어진다. 그럼 간다! 환은 같이 있던 두 녀석들과 함께 스쿠터 한 대에 탄 채 유유히 공터를 빠져 나간다. 나는 멀어지는 환의 무리들을,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쳐다본다. 잘 만들어진 액션영화의 잘 만들어진 액션씬처럼, 그들은, 내 친구들은 화려하고 멋지다.

집에 들어서자 누나의 방문이 조금 열려 있는 것이 보인다. 문을 통해 익숙한 연기가 흩어져 나오며 익숙한 냄새를 흩날린다. 나는 누나의 방으로 다가가 문을 활짝 열었다. 누나는 나를 보고 당황한 듯 서둘러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끈다.

담배도 피냐?”

누나는 대답하지 않은 채 벽에 붙은 커다란 창문을 연다. 어둠의 너머에서 생각보다는 상쾌한 밤바람이 문틈으로 들어온다.

피려면 밖에 나가서 피던가, 왜 안에서 피고 그래?”

난 밖에선 안 피워. 바람 때문에 담배연기가 가고 싶은 쪽으로 못 가면 불쌍하잖아.”

핑계 겁나 좋네.”

누나는 창문을 향해 손을 휘저으며 나를 노려본다. . 방문을 나가려는 나를 누나가 불러 세운다.

너 내 카메라 만졌냐? 왜 저게 책상 위에 있어?”

나는 누나의 말을 무시한 채 방문을 닫고 나온다. 채 환기되지 못한 연기들이 거실에 조금 흩어져 있다. 입 안에서 혀를 움직여본다. 교정기 사이로 덧니가 튀어나온 기분이다.

나는 거실 소파에 걸터앉는다. 등받이가 없는 소파는 내가 엉덩이를 붙이는 순간 아래로 약간 주저앉는다.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떠안게 되었을 때 주저앉는다는 건 편안하고, 그래서 현명한 일이다. 나는 잠시 동영상 속에서 주저앉아버린 아버지를 생각해본다. 그리고 또 누나를 생각해본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누나는 변했다. 귀가시간이 점점 늦어지더니, 이제는 피지도 않던 담배까지 피운다. 문득 머릿속에 먼지 하나 쌓이지 않았던 누나의 카메라가 떠오른다. 나는 다시 누나의 방 앞에 다가가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본다. 누나는 뭐가 그렇게 피곤했는지 침대에 누운 채 잠을 자고 있다. 나는 책상으로 시선을 움직인다. 낡고 빛바랜 형광펜으로 군데군데 밑줄 그어진 두꺼운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온다. 틀림없는, 영화학개론이다.

영화감독지망생이던 누나는 비디오카메라를 항상 가지고 다녔었다. 뭐해? 누나는 내 말에 대답 없이 미소를 지으며 내 얼굴을 카메라에 담고는 했다. 나는 영화감독이 된 누나가 확성기를 손에 쥔 장면을 떠올려봤다. 레디, 액션, ! 차분한 누나의 말투가 상상 속에서 확성기를 통해 빠져나올 때면 제법 날카로워지곤 했다. 잘 어울렸다. 나는 영화감독을 꿈꾸는 누나가 좋았다. 그러나 역시 아버지는 나와 달랐다. 누나에게만은 관대하던 아버지가 딱 한 번 누나를 교정한 적이 있었다. 누나가 예대 영화과의 합격통지서를 들고 왔을 때였다. 아버지의 차가운 손바닥이 누나를 향해 쇄도했고, 누나의 볼은 붉게 부어올랐다. 아버지는 조금 당황한 듯 했지만 곧 울음을 터트리는 누나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재수해라. 누나는 반항 한번 하지 않았다. 일 년 후, 치대생이 된 누나를 아버지는 자랑스럽게 바라보셨다. 나는 누나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좋아하던 꿈을 한 순간에 버려버린 누나가 너무 싫었다. 누나를 볼 때마다 이유 없는 서운함이 계속해서 느껴졌다. 그 후로 비디오카메라를 잡지 않는 누나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나는 절대로 아버지의 레디, 액션, 컷에 맞춰 살지 않겠다고.

 

누나의 방문을 닫고 나오자 휴대폰이 울린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든 뒤 액정위에 떠오른 이라는 글자에, 나는 재빨리 휴대폰을 귓가에 가져다댄다. 여보세요?

-집이냐? 야 스쿠터 기름 없는 거더라. 다른 거 하나만 가지고 지금 빨리 시내로 나와. 예전에 갔던 호프집 앞이야.

나는 알겠다고 대답한 후 전화를 끊는다. 이번에는 외투를 두고 군청색 교복 마이를 꺼내 입고 집을 나선다. 길가에 즐비한 스쿠터 중 디자인이 가장 괜찮은 파란색 스쿠터를 선택한다. 열쇠구멍에 옷핀을 꽂고 몇 번 움직이자 어렵지 않게 시동이 걸린다. 나는 스쿠터에 올라 탄 후 스쿠터를 몰고 도로로 나선다. 11월의 바람은 날카롭고 차갑다. 교복 마이만으로 막는 것은 무리였다. 으슬으슬 몸을 베어내는 바람에 몸을 조금 움츠렸더니 이가 훨씬 더 아파온다. 나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한 손으로 볼을 감싼다. 바람이 스치고 간 시린 눈망울에 눈물이 핑 돌고 물에 젖은 시야는 한없이 출렁이며 분산된다. 나는 한 쪽 손을 들어 눈가를 문질러본다. 그것은 찰나의 한 순간이었다. .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탓에 채 브레이크를 잡지 못한 스쿠터는 앞차와 부딪혀 튕겨져 나가버린다. 나는 차가운 아스팔트에 내동댕이쳐졌던 몸을 일으킨다. 앞차의 문이 열리고 두꺼운 외투를 입은 남자가 걸어 나온다. 나는 안심한다. 외투 앞에서라면 나는 당당하다.

교복 입었네? 중앙고구만. 학생, 이거 어떡할 거야?”

남자는 차의 뒤쪽을 가리키며 묻는다. 범퍼와 번호판이 찌그러진 승합차는 아무것도 아닌 어두운 몸뚱이를 부르릉, 진동하고 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본다. 약속장소 바로 앞이다. 나는 환을 찾기 위해 시선을 움직였고 언제나처럼 어렵지 않게 환과 친구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나는 여전히 그들의 몸에 걸쳐진 군청색 교복 마이를 발견하고 미소를 지었다. 이쪽을 보고 있던 환과 눈이 마주친다. 나는 손을 위로 들고 힘껏 흔들어본다. 그러나 분명히 나와 눈이 마주친 환은 나를 못 본 것처럼 몸을 돌려 다른 길로 가버린다. ! 나는 몇 번 고함을 지르다가 주머니를 뒤져 휴대폰을 꺼내들고 하도 눌러서 이미 외워버린 환의 번호를 입력한 후 통화버튼을 누른다. 익숙한 기계음이 뚜루루루루, 비웃음을 몇 번 흘린 후 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목소리에는 짜증이 가득 묻어있다.

-여보세요?

, 어디 가! 나 지금 여기서 접촉사고

-, 전화하지 마. 그런 건 너 알아서 해야지.

나는 전화기를 좀 더 귀에 가깝게 가져다대며 소리 지른다.

왜 그래? 친구가 어려운데 와서 좀 도와야지!”

-친구? 친구라는데?

그리고 한참동안, 수화기 너머에서 여러 사람의 웃음소리가 뒤섞여 들려온다. 나는 눈앞에서 소리치는 앞차 주인의 눈치를 보며 환의 다음 말을 애타게 기다린다.

-친구는 무슨. 이제 연락하지 마. 좀 놀아줬더니, 친구? 웃기고 자빠졌네.

전화는 끊겨버린다. 앞차의 남자는 씩씩대며 나를 노려보고 있다. 바람은 차갑고, 이가 시리고, 그리고 눈도 시리다. 시린 눈망울에 맺혔던 남자의 얼굴이 흐릿하게 일그러진다. 그리고 곧 젖은 채 출렁이기 시작한다. 남자의 외투는 한없이 따뜻하게만 보이고, 나는, 그렇게 당당하던 군청색 교복 마이를 입은 나는, 발가벗은 채 시베리아 한복판에 던져진 기분이 든다. 뒤로 돌아 있는 힘을 다해 달린다. 뒤쪽에서 남자의 고함소리가 크게 들려오지만 뒤돌아보지 않는다. 뒤돌아보고 싶지 않다. 아버지가 유독 괜찮게 생각하고 아끼던 카메라감독의 얼굴이 떠오른다. 카메라감독의 목소리도 떠오른다. 뭐 어때요! ! , , , , , ! 나는 스톱을 모르는 카메라감독처럼 멈추지 않고 달렸다. 내가 친구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던 그들에게, 나는 교정할 필요도 없이 발치해버리면 끝나버리는 덧니였다.

 

스쿠터로 10분이 걸리는 거리를 달려서 30분 만에 왔다. 등줄기를 흠뻑 적신 땀이 그러고도 만족하지 못했다는 듯 계속해서 흘러내린다. 나는 턱까지 차오른 날숨을 몰고 또 몰아 입과 코로 한꺼번에 뱉어낸다. 심장이 폐와 맞붙은 것처럼 요란하게 자기 나름의 호흡을 뱉어대고 있다. 호흡이 진정되자 이번에는 후들거리는 다리가 신경 쓰인다. 어서 주저앉고 싶다. 어서, 나를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아버릴 소파 위에 덩달아 주저앉고 싶다. 얼마나 편할까? 나는 현관으로 다가가 비밀번호를 누른다. 전자도어가 열리는 소리가 띠리링, 쓸데없이 명랑하다.

현관과 거실은 칠흑의 어둠이다. 나는 겨우겨우 신발을 벗은 후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본다. 어디선가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온다. 나는 불빛이 일렁이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움직여본다. 유난히 무거운 누나의 방문은 언제나처럼 반쯤 열려있다. 나는 조용히 다가가 문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누나는 비디오카메라를 손에 들고 흐느끼고 있다. 카메라 화면 속에서 아버지는 괴로운 듯 찡그린 얼굴로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있다. 촬영을 하는 내내 필름 속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웃지 않는다. 캄캄한 어둠을 바라보듯, 아무것도 없어서, 아무것도 아닌 곳을 향한 아버지의 시선은 초점이 없다. 아버지의 눈동자는 구름 낀 하늘처럼 하얗고 흐릿하게 변색되어 있다. 구름, 치과의 조명, 이빨, 그리고 아버지의 눈동자. 아무것도 덧대거나 칠해지지 않아서 순백은 언제나 눈처럼 시리고 차갑다.

아버지는 자존심과 죽음을 맞바꾼 사람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3점짜리 영화를 찍으며 만족하실 리가 없었다. 아버지의 영정 속 툭 불거진 덧니가 떠오른다. 아버지는 어째서 영화가 아닌 관객의 눈을 카메라에 담으려 했을까? 그리고 그냥 뽑아버리면 됐을 나 같은 덧니를 왜 끈질기게 교정하려고 하셨을까? 시간을 더 거슬러, 그 옛날의 조산원에서 왜 아버지는 어머니가 아닌 나를 선택하셨나? 애초에 아버지에게 나는, 정말로 덧니였나?

나는 누나 방의 문을 조심스럽게 닫는다. 아무리 조심해도, 무거운 문은 육중한 몸을 가누지 못한 채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닫혀버린다. 누나의 흐느낌이 잠시 멈췄다. 너무나도 적나라한 침묵이 눈동자에 고인다, 고였다가, 하얀 눈처럼 녹아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아버지에게 내 스스로를 덧니라고 생각했던 것이 부끄럽고, 환과 나머지 녀석들에게 내가 덧니임을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 죄스럽다. 침묵이 조금씩 흘러내리며 모습을 감추자 누나의 흐느낌이 다시 들려온다. 흐느낌이 흘러나오는 문틈으로 익숙한 연기와 냄새가 다시 흘러나온다. 나도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내 입에 문다. 불을 붙이자 희뿌연 연기가 방금 전 흩어진 누나의 연기를 쫓아 사방으로 흩어진다.

나는 입 안에서 혀를 굴려보았다. 혓바닥 끝에 우둘투둘 튀어나온 쇠붙이가 닿는다. 혓바닥에 점으로 찍힌 미뢰가 일제히 하얗게 일어서며 소스라친다. 쇳조각 특유의 비릿한, 맛인지 냄새인지 알 수 없는 것이 입 안 가득 고인다. 나는 손가락을 입 안에 넣고 교정기를 만져본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어쩐 일인지 교정기가 조금은 느슨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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