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에 가격을 매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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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에 가격을 매길 수 없다
  • 안동대학교 신문사
  • 승인 2019.10.04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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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0월이 되면 우리 문자 창제의 의미를 되새기고 국어와 한글 사용의 현실을 생각해 보곤 한다. 우리말을 소중히 아끼고 가꾸어 나가야 하는 데에 이견이 있을 수 없지만 문자기념일에 맞추어 굳이 젊은 세대들의 언어사용 실태를 언급하며 마치 이것이 한글 사용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인 양 이야기 하고 있다. 한글은 우리말을 적어내는 글자일 뿐이며 언어사용의 혼란은 한글로 인해 생겨난 것이 아니다. 한글은 새로운 말이 어떠하더라고 그것을 충실히 적을 수 있는 위대한 문자일 뿐이다.

각설하고 이미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간송미술관(서울시 성북구 소재)에 소장된 국보 70훈민정음1940년 경북 안동에서 발견되어 전형필 선생의 문화재 수집 염원에 의해 일정한 금액으로 매매되었다. 이 책에는 1443년에 창제된 훈민정음으로 이름붙인 문자의 제작원리와 용례가 담겨있다. 흔히 훈민정음 해례본으로 불리는데 이는 세종이 훈민정음 창제의 이유와 의의를 밝힌 어제서문(御製序文)’, 한글 28자의 글꼴과 음가 및 문장의 운용법을 설명한 예의(例義)’ 이외에 유일하게 제자해, 초성해, 중성해, 종성해, 합자해, 용자례(51)를 통해 문자 체계를 해석한 해례(解例)’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편 2008년 동일한 목판으로 인출된 것으로 보이는 또 다른 훈민정음고서가 언론을 통해 공개되었다. 이어서 발생한 책의 소유권과 관련한 분쟁은 법원의 판결로 마무리 되었다. 그러나 국가의 소유로 인정된 귀중한 서적은 아직까지 책을 최초로 언론에 공개한 상주시의 배 모 씨가 은닉하고 있다. 그동안 책의 가치와 관련한 언론의 여러 보도는 모두 배 모 씨와 국가에 책을 기증한 조 모 씨 간에 벌어진 민사재판의 과정에서 나온 말들을 흥미 위주로 전달한 것이었으며, 이로 인해 국민들은 훈민정음의 가치를 금액으로 판단하게 되는 잘못을 범하였다. 우리는 이번 사건이 발생하기 전 우리의 문화유산에 가격을 책정하여 평가한 적이 있었던 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는 우리 문화사에서 가장 위대한 발명이라 평가되는 훈민정음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더 이상 고서 수집자가 일으킨 일련의 논란에는 이제 관심을 접어야 할 것이다.

상주에서 발견된 훈민정음은 법원의 판단에 따라 더 이상 매매가 될 수 없게 되었다. 이미 간송미술관 소장 훈민정음을 통해 속에 담긴 내용에 대한 학술적 연구가 이루어졌고 이제 발견된 서적은 단순히 간송미술관의 훈민정음과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일 뿐이다. 또한 전체 33장의 책에서 적어도 3분의 1이상은 낙질된 상태로 추정된다. 혹자는 새로 발견된 훈민정음은 책의 표지 제목과 규격이 다르고 본문에 묵서로 훈민정음을 연구한 흔적이 적혀있다고 하여 그 가치가 간송미술관 소장본보다 더욱 크다고 한다. 그러나 제목과 규격은 소장자가 임의로 정할 수 있으며, 본문의 글귀는 조선 후기 학자들의 문자연구서 등에 흔히 적힌 내용일 뿐이다.

상주의 배 모 씨는 지자체가 100억을 주겠다는 제안도 거부했고 공공연히 언론을 통해 국가로부터 1천억을 받아야 한다는 억지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라도 책을 1천억으로 바꿀 수 없으며 국가가 최대한 양보하더라도 줄 수 있는 금액은 한계가 있다. 국가는 더 이상 문화재를 가격으로 흥정하는 이에게 휘둘리지 말고 오히려 책의 환수에 대한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 세종이 남긴 훈민정음의 소중한 의미를 되살리는 데에 힘써야 할 것이다.

훈민정음에 가격을 매기는 것은 우리 스스로 귀중한 유산을 상업적으로 판단하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며, 나아가 오히려 현재 국가 소유의 상주 훈민정음이 공개되는 기회를 없애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우리는 이미 1천억이 아닌 감히 금액으로는 말할 수 없는 문자의 혜택을 받고 있다. 우리가 원한 것이 과연 훈민정음이란 고서인지 아니면 그 속에 담긴 백성을 향한 세종의 마음인지를 다시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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