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잊혀져도 기록은 영원하다
상태바
기억은 잊혀져도 기록은 영원하다
  • 김혜미
  • 승인 2019.10.04 15: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록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할 때
하찮은 가치가 아닌 소중한 자산
유 동문이 시민 기록물을 설명하고 있다.

 

일본에서 유래한 민간기록물 대신 시민기록물이란 말로 소중한 기록을 모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바가 있으면 그 목표만을 향해 나아가는 유경상(민속·85) 동문이 그 주인공이다.

유 동문은 학생운동에 참여하며 정치에 관심을 가졌고 부정 부패한 모습을 기사로 작성해 비판했다. 또한 정부가 신경 쓰지 않고 있는 시민 기록물 수집과 보존을 경북기록문화연구원 설립으로 계속 이어나간다.

안동시 영가로에 위치한 경북기록문화연구원에서 유 동문을 만나 그가 살아왔던 기록을 살펴봤다.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며

처음에는 영문학을 배우고 싶어 영어교육학과를 희망했지만 전국에서 유일한 학과인 안동대학교 민속학과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래서 주변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입학했지만 막상 진학하니 민속학이나 서민 문화의 정신 연구가 아닌 학생운동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됐다.

당시 전체 학생의 절반 이상은 대학의 민주화 열망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많은 학생이 학생운동에 나서면서 수업을 듣지 않아 학교 측에서는 졸업 시 학생정원을 제한하는 졸업정원제를 시행했다. 그러나 학교의 바람과는 달리 우리는 그것 때문에 시위를 더 많이 했고 가을에 열렸던 대동제 이후로 화염병이 처음 등장하기도 했다.

학생운동을 하면서 기억에 남았던 일

학생운동은 대학 생활을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다. 앞서 말했듯이 공부하러 들어간 대학인데 공부보다 학생운동을 더 많이 했다. 그때는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생각에 선후배와 동기가 모여 하나의 조직을 만들고 시위를 하며 큰 집회에 참여했다. 그러면서 성적은 자연스레 떨어졌고 그만큼 학교는 더 오래 다니게 됐다. 결국 김영균(민속·90)이 입학하는 것을 보고 나서 군대를 갔다. 입대 후에도 학생운동의 영향을 받았다. 김영균이 분신자살을 하면서 내가 속했던 조직이 반미애국학생회로 판단돼 반국가적 이념을 가진 단체의 일원이라며 군사 재판을 받았다. 재판 결과 구속됐고 그로 인해 결혼을 약속했던 사람과 파혼했다. 이것은 누구를 탓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좋지 않은 시대에 태어났고 불운했던 것뿐이다.

신문 기자를 하게 된 이유

유 동문이 지금까지 모은 기록을 보며 웃고 있다.

1991년도 6월에 구속돼 1992년도 1월에 출소했는데 한국민주청년단체협의회 소속의 시·군 단위 청년회가 생겨났다. 그때 간사 활동을 함과 동시에 초창기 한겨레 신문을 1년간 새벽마다 배포했다. 그러면서 신문을 열심히 읽었고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다.

19933월에 안동에 다시 이사를 오면서 우연히 알게 된 주간 내일신문창간 모임으로 들어가 활동했다. 정치·경제의 중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자 했다. 그러나 신문사를 운영하기 위해 최소 50억 정도는 있어야 했기에 안동문화권에서 소액 주주 활동을 했다. 그렇게 세운 신문사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고 몇몇 신문사 기자를 하다가 40살에 국방부 조사관을 위해 신문사 생활을 정리했다.

지금 활동하고 있는 경북인 뉴스는 43살에 다시 안동으로 돌아와 만든 것이다. 이는 오마이뉴스 타이틀인 모든 시민은 기자다에 감명을 받아 만들었다. 그래서 경북 전역을 포괄하는 주민참여형 인터넷 언론 창간으로 소통과 연대 서비스를 구축한 인터넷 신문사를 만들었다. 경북인의 삶과 문화, 자연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며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 속으로(in) 들어가 새로운 참여 언론 망을 구축하는 것을 추구한다.

기자로서 목표나 신념

처음 기자가 됐을 당시 지역사회가 많이 부패한 상태였다. 그 사태를 알려줄 만한 경종을 울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부정부패와 관련된 사건을 많이 다뤘고 늘 싸움의 연속이었다. 그것이 기자와 언론이 해야 할 일이고 나의 신념이었다. 반면 현재는 서민층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것이 기자가 해야 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부정부패를 감시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지역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해 언급해야 한다. 지역자치나 분권을 확장할 방법을 기사로 긁어줘야 한다.

옛 기록을 보존하기로 다짐한 계기

과거에 했던 모든 경험으로 이 일을 하게 됐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2005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을 하면서 기록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기자 생활을 하며 그 생각을 굳혔다. 본격적인 관심은 2014년도에 글 한 편 쓰려고 지인이 쓴 책을 찾으려 했지만 찾을 수 없었던 것에서 시작됐다. 이와 관련해 시청에 문의했으나 주민 기록물도 중요하지만 굳이 해야 할 의무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물론 시청 측 의견도 맞으나 적어도 관심 정도는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 기록과 관련된 공부를 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경북에 문화유산은 많지만 그에 관련된 기록은 많지 않다고 느꼈다.

현재 사라져가고 있는 삶, 건물, 문화를 기록하고 보존해야 한다. 안동댐 건설로 수몰돼버린 마을과 같이 2021년이면 더는 사용되지 않을 안동역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기억에 남는 기록

작년 안동댐으로 수몰되기 전 있었던 마을은 가장 인상적인 기록 중 하나다. 이 마을에서는 1975년 마을을 지켜주는 동구나무에게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기원하는 제의인 동제를 지냈다. 그 기금으로 사진사를 불러 마을이 없어지기 전 마지막 마을 졸업사진을 찍었다. 가정마다 마을 어르신들은 따로 당나무 앞에서 한 번 더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들을 모아 마을 졸업 앨범을 만들었다. 무일푼으로 쫓겨나면서도 그 마을의 모습, 한 마을의 안식처가 됐던 보금자리를 사진으로 기록했다. 작지만 소중한 기록물이다.

기록물을 모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

아무래도 기록물 모으는 일 자체가 어렵고 힘들다. 사람들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사진 몇 장, 메모지, 농사일지 등을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어르신들은 필요 없는 사진을 가져가려 하니 대부분 불신을 가지고 우리를 적대시한다. 또한 자신의 사진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그래서 우리가 직접 나서는 것이 아닌 어르신들과 친한 퇴직 공무원 같은 분들께 좋게 말해달라고 부탁한다. 반면 아주머니들은 이 일에 많은 관심을 가진다. 아주머니를 통해 어르신들을 만나기도 하고 그분들이 바람잡이 역할을 해줘 기록을 비교적 쉽게 얻기도 했다.

기록문화연구원을 꿈꾸는 학생에게 해주고 싶은 말

기록문화에 관심이 있는 학생끼리 동아리를 만들어 경험을 쌓아가면 좋겠다. 대학 내 다양한 이야기와 기록물을 수집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토론하길 바란다.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진과 삶에 관련된 기록은 소중한 기록유산이라는 생각을 사람들에게 심어줘야 한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모은 기록을 디지털화시킨다면 그것이 바로 아카이브의 시작이다. 그러다 보면 사회인과 대학생이 연계해 새로운 창업을 하거나 다른 길이 열릴 것이라 예상한다.

솔직히 쉽지 않은 길이다. 그러나 그 길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 길로 꾸준히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빛을 보게 될 것이다. 힘내길 바란다.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갈 예정인가요?

과거 기록을 모으는 일도 꾸준히 하겠지만 현재를 기록하는 일부터 수행할 생각이다. 더 나아가 향후 3년 내로 경상북도 도민 기록센터를 건립해 시군 단위에서 시민 기록물 모으는 일을 주도할 것이다. 이에 그치는 것이 아닌 각 직업군에서도 좋은 기록들을 찾으며 시민 참여를 유도할 예정이다. 학생들은 봉사활동 형식으로 기록물에 관심 가지게 하고 청년들은 새로운 일자리 형태로 관심을 높이려고 한다. 또한 시민 기록물 중 소중한 것을 바로 찾아서 볼 수 있고 그것을 인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

 

Q. 동문이 기억하는 김영균 열사

A. 학교를 같이 다니지는 않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후배 중 한 명이다. 내가 기억하는 김영균은 입학식 이튿날 수소문해 날 찾아올 정도로 학생운동에 관심이 많은 아이였다. 당시 나는 단기사병이기에 출퇴근하면서 1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계속 교류해 아꼈던 후배였다. 그래서 학생운동 중인 다른 후배들에게 소개했다. 만약 내가 학생운동에 앞장서지 않고 그런 일에 큰 뜻이 없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소중한 후배다.

Q. 기록문화연구원에 들어가기 위해 갖춰야 할 소양

A. 이 일은 봉사활동과 비슷하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며 특별히 해야 할 일도 없다. 단순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투자하는 것뿐이다.

굳이 필요한 소양을 말하자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고 정확히 기록해야 한다. 또한 글을 쓰는 일이다 보니 책을 많이 읽어야 하고 다양한 곳을 많이 다녀보는 것이 좋다.

Q. 국방부 조사관 역할을 수행하면서 무슨 사건을 다뤘나요?

A. 정치는 기자 생활을 하면서 더 관심 가지게 된 분야다. 편집장을 하다가 선거 운동에 뛰어들기도 했다. 그때 국정원과 국방부, 경찰청 등 국가기관이 스스로 과거사를 규명하고자 사람들을 모집했다. 정부 일에 참여하고 싶어 국방부 조사관에 지원해 특채로 뽑혀 활동했다. 이는 과거 군이 저지른 악행 8가지를 전면 재조사했다.

우리 팀이 맡았던 사건은 비극적이었던 실미도 사건과 불교 정화를 목적으로 절 3,000여 개를 침략한 법난 사건이다. 이 두 사건을 조사하면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기록 자료를 확보하는 일이다. 자료를 찾기 위해 하루 동안 국회도서관에 박혀 필름을 계속 돌려보기도 했다. 그렇게 찾은 자료는 여러 사람을 만나 주장과 비교해 진실을 규명하는 데 쓰인다.

이 일을 하면서 내가 원하는 자료를 찾았을 때, 이 사건의 실체에 더 가까이 갔을 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또한 기록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