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해례본 우리말 창제원리를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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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해례본 우리말 창제원리를 담다
  • 박민지 기자
  • 승인 2019.10.04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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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으로부터 지켜낸 간송본
법원 상주본 반환 판결 확정

 

훈민정음해례본 간송본
훈민정음해례본 간송본

한글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문자를 만든 사람과 창제원리가 확인된 글자다.

훈민정음해례본은 훈민정음 해설서로 1446(세종 28)에 목판본 1책으로 간행했다. 이는 어제서문(御製序文), 예의(例義), 해례(解例), 정인지후서(鄭麟趾後書)로 구성됐다. 세종은 어제서문 본문에 훈민정음 창제의 이유와 의의를 명시해놨다. ‘예의는 한글 28자의 글꼴과 음가 및 문장의 운용법을 설명한다. ‘해례에는 제자해, 초성해, 중성해, 합자해, 용자례(51)를 통해 문자 체계를 해석한 부분이 수록됐다. 마지막 정인지후서에는 정인지가 훈민정음 간행에 참여한 학자 명단 및 글자에 대한 견해를 밝힌 부분으로 구성됐다.

훈민정음해례본 간송본(간송본)1940년 안동시 와룡면에서 처음으로 발견돼 현재 간송미술관에서 보관 중이다. 훈민정음해례본은 1962년 국보 제 70호로 지정됐고 한글을 만든 목적과 유래, 사용법, 창제의 세계관을 동시에 밝히며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97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현재 간송미술관에서 보관 중인 간송본과 최근에 발견된 상주본은 문자 체계를 해석한 해례가 포함된 두 개뿐인 훈민정음해례본이다.

1938년 간송 전형필 선생은 문화재 수집에 열성을 보이며 전국 각지의 귀중한 문화재를 수집했다. 간송본 역시 그중 하나다. 전형필 선생은 안동에서 훈민정음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고 당시 큰 기와집 열 채를 구입할 수 있는 1만 원 (현재시가 30억 추정)에 책을 매수했다. 그 후 전형필 선생은 한글 사용을 탄압하던 일본으로부터 간송본을 지켜내 해방 후 이를 공개했다.

그동안 유일하게 전해오던 간송본 외에 다른 해례본이 상주에서 나타났다. 고서적 수집상인 배익기가 2008MBC 방송을 통해 또 다른 훈민정음해례본인 상주본을 공개한 것이다. 하지만 상주본 도난을 주장하는 골동품 수집상 조용훈의 등장에 상주본의 소유권을 두고 민·형사 소송이 진행됐다. 그 결과 2010625일에 대구지법 상주지원이 상주본의 소유권이 조용훈에게 있다는 취지의 판결을 선고했고 대구고등법원과 대법원 역시 같은 판결을 내렸다. 그럼에도 배익기가 상주본을 조용훈에게 인도하지 않자 조용훈은 201175일 대구지검 상주지청에 배익기를 강제집행면탈, 절도,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나 대구고등법원은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관련 증인들의 진술은 모두 믿을 수 없고 그 외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 이 사건 공소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피고인의 범죄사실이 증명되지 않은 때에는 무죄를 선고한다는 형사법의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른 것이다. 한편 법원으로부터 상주본의 소유권을 인정받은 조용훈은 2012년 사망 당시 상주본의 소유권을 문화재청에 기증했다. 따라서 현재 상주본의 소유권은 문화재청에 있다.

소유권이 문화재청으로 이전됨에도 배익기는 현재 상주본의 보상금으로 1,000억 원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천명희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1940년 간송본이 처음 발견되고 지금까지 간송본이 창출해낸 경제적 가치가 1조 원 정도다형사재판과정에서 상주본의 가격을 상징적인 의미로 1조 원으로 책정한 것이다 고 했다. 이어 천 교수는 국가에서 개인에게 문화재를 환수받을 때 통상 그 문화재 가격의 10분의 1의 가격을 책정해 보상금을 지급하는 데 배익기는 1조 원의 10분의 1 가격인 1,000억 원을 배상금으로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덧붙여 천 교수는 훈민정음 상주본은 문화재적 가치는 충분하지만 간송본과 같은 내용의 책이며 이미 충분한 학술적인 연구가 이뤄져 학문적인 가치가 떨어진다고 답했다. 천 교수는 간송본에서 결락된 앞의 1~2장은 상주본에서도 소실됐기 때문에 학술적으로 추가로 얻을 정보는 없다고 덧붙였다.

2008년 상주본이 처음 공개된 후 민사재판과 형사 재판을 통해 상주본이 국가의 소유(문화재청)임은 명확해졌다. 하지만 이러한 법원 판결 이후에도 배익기는 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한편 상주본은 2015년 배익기의 자택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한 장이 소실되고 일부가 불에 탔다. 이에 문화재 관리 소홀의 문제 역시 피해 갈 수 없다. 상주본을 두고 문화재청과 배익기의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앞으로 상주본의 행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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