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개인 삶의 집합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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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개인 삶의 집합체
  • 김혜미 기자
  • 승인 2019.06.03 15: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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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속 인물에 집중해라
단순운동이 아닌 독립운동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버텨라는 말처럼 묵묵히 자신의 역사를 만드는 동문이 있다. 개인의 역사가 모여 사회의 역사가 되고, 나라의 역사가 된다고 말하는 동문. 사건이 아닌, 사건 속 개인에 집중해 새로운 인물을 발굴하며 살아가는 강윤정(사학·86) 동문이 그 주인공이다.

강 동문은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독립운동기념관)에서 학예연구부장으로 학예연구 사업을 총괄한다. 더불어 묻혀있는 여성 독립 운동가를 찾아 연구하고 책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중이다.

입춘을 시샘한 한파가 몰아쳤던 지난 1월 독립운동기념관에서 동백꽃처럼 새하얀 미소를 품은 강 동문이 반겼다. 강 동문은 대학 시절엔 많은 고민을 했다며 그의 역사 이야기를 솔직담백하게 풀었다.

사학과에 진학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고등학생 시절 재미있게 들었던 역사 수업 덕분에 관련 학과를 희망했다. 반면 아버지는 진로가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거리 상 가까운 안동에 있는 대학에 입학해 간호대나 사범대로 진학하길 원했다. 그러나 꿈은 스스로 쫓아가야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졸업 후 바로 취직을 하겠다는 조건으로 아버지를 설득해 결국 허락을 받았다.

대학 시절 중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요?

대학 시절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 그 사이를 채워준 것이 책이다. 책 한 권 살 여유가 없어 식비를 줄였다. 이로 인해 소중한 책이 내 품에 들어왔고 이것이 내 삶의 소소한 행복이었다. 책 읽는 것이 즐거워 서점 손님이 나에게 책 위치를 물어볼 정도로 서점에 자주 찾아가 두세 권씩 읽었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지만, 다양한 종교를 공부했다. 한 번은 금정암이라는 절에 스님의 허락을 받고 동기와 공부를 위해 12일 동안 생활했는데 온종일 일만 시켰다. 밤늦게 잠들면 새벽에 깨워 법문을 읽혔다.

그때 스님은 밤에 잠이 오지 않는 것은 낮에 노동이 부족한 탓이고, 세속에서 되지 않는 공부가 절에 온다고 되는 것은 아니니 내려가서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공부해라고 말씀했다. 이 말은 잊히지 않는 인생의 한 컷이다.

어떻게 하면 역사가 재미있나요?

역사가 재미없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나와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를 거시적 관점에서 보느냐, 미시적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전자는 전체적인 역사의 흐름 속에서 사건이 일어났고 그 사건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본다. 반면 후자는 그 사건 속에서 활동하는 인물에 집중한다. 개인적으로 후자 관점에서 역사에 흥미를 느낀다.

현재 독립운동사는 한국 근대사에서 큰 의의가 있다. 한국 근대사는 독립과 국민주권 국가로 만드는 일이라는 두 가지 중요한 시대 과제가 존재했다. 독립운동사는 이를 동시에 해결한다. 그 시점이 3·1운동이고, 이는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탄생시킨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것을 외우기만 한다면 힘들고 따분한 작업이 될 것이다. 반면 그 속에서 개개인의 역할과 삶을 들여다본다면 과거의 역사가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이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라고 생각하나요?

하나의 사건을 콕 집어 말할 수 없다. 역사를 보면 어디에나 갈등은 있고 그 속에서 갈등을 풀어내려고 애쓰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미래를 열어가는 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일제강점기에는 같은 목표지만, 다른 이념으로 인한 갈등이 발생한다. 항일 투쟁이 처음 시작될 때 의병 항쟁과 애국계몽운동으로 나뉘었다. 두 집단의 목표는 무너지는 국권을 붙잡아 튼튼한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의병은 위정척사 사상을 가지고 복벽 주의를 주장하며 조선의 옛 질서를 그대로 유지하려 했다. 반면 애국계몽운동은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이며 교육을 통해 신민으로 양성하자고 주장했다. 결국 애국계몽운동 계열의 학교인 안동 협동학교에 의병이 습격해 서울에서 파견된 교사가 사망한 일이 발생한다. 이것이 양자가 충돌한 대표적인 사건이다.

3·1운동은 어떻게 바라보나요?

근대사에서 3·1운동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혹자는 3·1운동을 길거리에 나와 단순히 만세를 외쳤다고 정의한다. 그러나 이 운동은 독립을 선언한 독립운동이다. 3·1운동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종교를 초월해 연대하고 함께 거리로 나와 만세를 외쳤다는 것이다. 더불어 민중들이 독립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중요한 계기다. 그 후 독립운동가들은 임시정부를 만든다. 이를 대표하는 것이 상해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이는 대한민국이라는 국호, ‘()’이 들어가는 국호가 탄생한 역사적인 순간이다. 대한 제국이라는 나라에서 임시정부지만,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나라를 만들고자 했다. 따라서 3·1운동은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나라를 만들고자 한 첫 순간이고, 백성()이 민중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업무 중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인가요?

독립운동기념관과 처음 인연을 맺었을 때가 기억에 남는다. 당시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바로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이상을 쫓기엔 벅찬 현실 속에 있었다. 그래서 공무원 시험을 통해 농업기술센터 생활 지도사로 근무하며 안동대에서 석사 과정을 밟았다. 그때 지도교수님이 안동에 기념관을 지으려고 하는데, 같이 해 볼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그 시점부터 기념관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그리고 진정한 내 삶의 길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독립운동기념관이 세워지고 얼마 뒤 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안동대에서 석주 유고 번역을 연구과제로 수행했다. 그때 석주 이상룡 선생이 걸었던 길을 찾아가 보고자 만주에 갔다. 책으로 접했던 것보다 현장에서 본 독립운동가의 삶은 더 처참했다. 이를 통해 독립운동가의 삶을 연구해야겠다고 느꼈다. 그렇기 때문에 2007년 독립운동기념관을 지은 후 지금까지도 여기에 몸담고 있다. 나에게 독립운동기념관이 어떤 의미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항상 똑같다.

독립운동기념관의 역사는 나의 역사다.

후배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요?

역사란 개개인의 이상을 현실화하고 그 과정을 모아 놓은 것이다. 즉 개인의 꿈이나 살아가면서 어떤 역할을 하겠다는 이상을 현실화시키는 것이 역사다. 따라서 대학 시절에 해야 하는 일은 자신이 어떤 인간이길 바라는지 고민하는 것이다. 또한 이를 현실화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들여다봐야 한다.

대학 4년 동안 꿈과 이상을 동기와 나눠야 한다. 이것은 인생에서 어떤 힘든 순간을 만났을 때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에너지가 된다. 따라서 튼실한 개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하나의 역사를 만드는 일이다. 살아가면서 내가 원하는 최선의 상황이 내 앞에 주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결국 자기의 역사는 자기가 만들어야 한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선택하고 그 순간에 절망하지 말고 희망차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최종 꿈이 무엇인가요?

인생은 총 4막이라고 생각한다. 시골 농부의 오 남매 중 맏이로 태어나 대학에 들어간 것이 1막이다. 2막은 공무원 생활을 했던 시기다. 현재 독립기념관에 들어와서 독립운동가를 알리는 3막을 살아가고 있다. 앞으로 펼쳐질 4막에 대한 고민은 3년 전부터 계속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까지는 몸이 평안한 삶을 살아왔다. 앞으로는 남들이 하지 않으려고 피하는 곳에서 몸을 움직이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막연히 생각한다. 어떤 길을 걸어갈지 나 자신도 기대하고 있다. 어디에서 어떤 상황에 부닥쳐야 할지 고민이다. 그 큰 고민 속에 개인 구도의 문제, 역사적 과제, 몸으로 실천하는 과제가 인생 4막이 될 것 같다. 아직 확정된 공간과 명확한 길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

 

 

Q&A

Q. 사학과 졸업해서 취직할 수 있을까요?

A. 많은 학생의 현실적인 고민인 것 같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본인이 설정한 목표가 있을 것이다. 거기에 너무 매달리면 오히려 힘들어지고, 현재에 충실하지 못하게 된다. 과거에 저질렀던 실수나 당시 있었던 일에 너무 매달려 현재를 놓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야 한다.

하루 세 시간 이상 하는 것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것이 미래다. 냉철하게 자신을 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밖을 보고 비난만 하게 된다.

석주 이상룡 선생은 의병 항쟁을 다른 방법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방법으로는 백성을 죽음의 길로 몰아넣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비판하며 정예부대를 육성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그리고 실천했다. 이처럼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닌 실천하는 삶을 살길 바란다. 실천하다 보면 어느새 꿈에 가까워져 있을 것이다.

Q. 대학원 전공은 어떻게 정했나요?

A. 전공이 지역사인데 이를 선택한 계기가 있다. 농업기술센터에 다닐 때 여러 농민과 1997년에 영국, 덴마크, 독일을 다녀왔다. 그곳은 농업보단 다양한 지역 스토리를 활용해 많은 관광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지역에 있는 역사를 스토리로 만들어 지역민이 공유하고 외국인까지 끌어들이는 것은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와 김희곤 교수님과 상담했고 독립운동사를 연구하기로 결정했다.

공부를 하다 보니 큰 틀의 역사도 중요하지만, 그 속에서 힘들게 살아왔던 그들의 인간성, 인간적인 고뇌에 감동하고 이 전공에 매력을 느꼈다.

Q. 대학시절 겪었던 민주화 운동은 어떤 모습인가요?

A. 당시 크리슈나무르티의 자기로부터의 혁명에 초점을 맞춰 고민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 쪽으로는 나서지 않았다. 그래서 그 시절 민주화 운동을 열렬히 했던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분들에게 빚을 갚기 위해서 더 열심히 살아야 했다. 지금도 열심히 민주화 투쟁을 한 친구를 만나면 항상 너희보다 두 배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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