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식의 위기(危機)
상태바
역사의식의 위기(危機)
  • 안동대학교 신문사
  • 승인 2019.09.04 09: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근 일본과의 갈등으로 인해 역사에 대한 열기가 다시 뜨거워졌다. 이에 호응이라도 하듯 방송가에서는 역사 관련 예능이 다시 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영화에서도, 책으로도, 우리 역사에 대한 접근이 활기를 보이고 있다. 바야흐로 역사의 대중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시대라 할 수 있겠다. 역사의 대중화는 주로 권위 있는 사람의 발언이나 저서, 혹은 미디어 등을 통해 이루어진다. 정말 쉽고 빠르게, 그리고 광범위하게 역사적 사실, 현상, 원리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그런데 단점도 만만치 않다. 기존까지는 역사와 관련된 문제라고 하면 식민사관과 같은 역사왜곡이 문제의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역사의식(History Consciousness)사회 현상을 역사적 관점 또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파악하고, 그러한 변화 과정에서 주체적인 관계를 가지려는 의식이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역사적 관점, 시간의 흐름에 따라 파악한 뒤, 그러한 변화 과정에서 주체적으로 관계를 형성하고 자각(自覺)하려는 일련의 행위들이 포함된다. 다양한 역사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폭넓은 논의를 할 수 있을 때, 민주주의가 발전한다고 보는 이유로 역사의식은 매우 중요한 가치이다. 그러나 밑의 두 가지 예시를 통해, 조금은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하나는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도서인 <반일 종족주의>, 이 책의 저자들은 우리나라의 사회 문제와 근·현대사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관점이 반일(反日)’ 때문에 이루어졌다고 본다. 친일과 반일로 나누어진 현 시국에서 이 책은 기존과는 다른 구성과 시사성이 높다는 점 때문에 매력적인 책으로 보일 것이다. 실제로 <반일 종족주의>가 기존 역사에 대한 비평과 통계적 자료를 이용한 균형감각의 형성을 시도했다는 점은 인정할 만한 점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책은 학계에서 이미 끝난 논쟁들을 가지고 마치 자신들이 독창적인 대안을 내놓은 것처럼 서술한 점, 대중들이 역사에 대해 피상적으로 알고 있거나 식민지 시대와 같은 일부 분야를 모르는 것을 교묘하게 이용했다는 점 때문에 강도 높은 비판을 받는다. 그래서 이 책은 저자들이 권위는 있으나 타 분야이자 비전문 분야인 역사에 그들만의 관점으로만 접근해서 대중에게 혼란을 주는 사례가 된 셈이다.

다른 하나는 영화 <나랏말싸미>를 들 수 있다. 이 영화는 교과전문가(교육자)들도 이 문제를 비켜갈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이 영화는 세종대왕이 아닌 신미라는 승려가 한글을 창제했다는 내용으로 영화가 진행된다. 그러나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했다는 것은 이미 정설이고, 세종대왕이 불교를 본격적으로 가까이 한건 소헌왕후가 사망한 이후라고 보는 것이 중론(重論)이다. 따라서 고증에 오류가 있는 요소들로 영화가 만들어 진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자라 할 수 있는 역사 강사가 영화 홍보 영상에 출연해서, 기존의 정설을 비판한다고 이미 위서(僞書)로 판명된 것들을 증거라고 제시했다가 논란이 되자 삭제했다. 이는 검증 없이 새로운 것을 대중들에게 알리려다 낭패를 본 사례다. 모든 분야가 그렇듯 역사에서도 비판적 자세가 요구된다. 역사는 선()과 악()같이 특정 요인으로만 구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건, 그에 따른 해석과 시각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개인의 문제, 사회의 문제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파악하고 주체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역사의식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세상이 어려워지는 탓에 언제부턴가 모든 분야에서 선()과 악()같은, 이분법에 가까운 구별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역사적 발전과정을 이해함에 있어서도 경제발전과 같은 분야가 덕목이 되어버리는 등 다면적이고 비판적인 수용이 어려워지고 있다. 이는 조선시대 등 일부 역사를 상당히 저평가하고, 나아가서는 사건과 집단에 대한 평가가 장점이나 단점 둘 중 하나만을 부각시키려는 등 지나치게 극단적이며, 일부를 통해 전체를 판단하려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배경은 충분히 참작할 만하다. 우리의 근현대사가 제국주의-일제강점기-분단-독재라는 시련을 연속으로 겪었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역사적 문제와 이념 문제에 대한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발전까지 짧은 시간에 이루어졌고, 이로 인한 사회적인 문제가 광범위하게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들이 역사에 대한 몰이해를 유발하는 정당성을 부여하지는 않는다. 간단한 예로 우리는 일본의 잘못된 역사의식을 경계하고 질타해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의 역사의식은 어떤지, 역사 자체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괴물과 싸우려다 괴물이 되는 불상사는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역사의식의 문제와 위기를 극복할 때, 우리 주변에 있는 역사와 연관된 문제들을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김수현(사학·13)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