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뽑지 못한 이야기, 성매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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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뽑지 못한 이야기, 성매매
  • 서영건 기자
  • 승인 2019.09.03 17: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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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소와 지구대의 불편한 이웃관계
민·관 합동단속은 수시로 이뤄져
사실상 자진폐쇄 수순 진행 중

안동시 운흥동 일대의 한 골목에 위치한 건물에서는 오늘도 어김없이 붉은 불빛이 새어 나온다. 골목 입구 한편에는 청소년 통행금지(제한)구역 (24시간)’이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고 표지판으로부터 약 80m 떨어진 곳에는 안동경찰서 역전지구대가 있다. 얼핏 보기에는 주변 골목과 같이 평범한 거리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곳은 24시간 내내 청소년이 보호자 없이 지나다닐 수 없는 청소년 통행금지구역이다.

청소년이 다닐 수 없는 이유

청소년 통행금지·제한구역은 지방자치단체장이 청소년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할 경우 청소년의 정신적·신체적 건강을 해칠 우려가 있는 구역에 지정한다. 그 구체적인 지정기준은 조례로 정하므로 지방자치단체마다 상이하다. 안동시는 안동시청소년 통행금지구역·통행제한구역 지정및운영에관한조례에서 그 기준과 대상을 정해 놓았다. 이에 의하면 청소년 통행금지구역은 윤락행위가 행해지거나 행해질 우려가 있는 지역 기타 청소년의 출입이 청소년에게 심각하게 유해하다고 인정하는 지역에 지정할 수 있다. 청소년 통행제한 구역의 지정기준은 청소년 유해업소가 밀집된 구역 청소년 유해 매체물, 약물 등의 판매·대여·유통·제공행위가 빈번히 행해지거나 행하여질 우려가 있는 구역 관할구역 주민 1,000명 이상이 연명으로 통행제한구역으로 지정하여 줄 것을 요구하는 지역 기타 청소년의 출입이 청소년에게 유해하다고 인정하는 지역에 지정해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통행을 제한할 수 있다.

그곳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나

운흥동 일대의 청소년통행금지구역은 지구대가 코앞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다. 이곳에서 성매매 등 불법 윤락행위가 벌어지고 있다면 청소년통행만 막을 것이 아니라, 단속과 행정집행을 통해 그곳으로부터 업소를 퇴거 시켜 불법행위를 억제해야 한다.

권오국 안동경찰서 생활질서계 경감은 경찰에서는 평상시에도 성매매 행위 근절을 위한 단속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다만 성매매 행위의 특성상 음성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단속 활동을 함에 있어 증거확보 등 어려움이 있다고 전했다. 증거확보의 어려움이 단속에 영향을 미치는 까닭은 의심스러울 땐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법의 대원칙인 무죄 추정의 원칙과 연관이 깊다. 형사소송법에 의하면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해야 하고 그 증명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307). 증거가 불명확해 피고인의 무죄가능성을 이끌어내는 합리적인 의심이 있다면 법관은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 그러므로 수사하는 입장에서는 분명한 증거의 확보를 중요시할 수밖에 없다. 이어 권 경감은 그럼에도 저희 경찰은 집중단속기간 지정 등 다양한 방법으로 성매매 행위 근절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일한 청소년통행금지·제한구역

1999년 안동시에 청소년통행금지·제한구역을 설정한 이후 지금은 운흥동 일대의 단 한 곳만이 남아있다. 안동시 조례는 청소년통행금지구역과 청소년통행제한구역을 별도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곳에는 그 두 가지 구역이 동시에 설정돼있다. 조정순 안동시청 평생교육과 주무관은 해당 지역은 청소년의 출입이 청소년에게 유해하다고 인정해 청소년 통행금지·제한구역으로 운영 중이다그러나 이곳의 건물은 등록된 업소가 아니라 개인의 사유재산으로, 성매매 제보가 없는 상태에서 행정집행이나 퇴출이 어려운 실정이다고 밝혔다. 이곳의 단속현황에 대해 조 주무관은 경찰과 청소년유해환경감시단, 1388청소년지원단, 관계 공무원들이 수시로 이 곳을 순찰하고 있다경찰과의 협력관계로 서로 단속정보를 공유한다고 전했다.

 

홍등가 퇴거, 성공사례는?

윤락업소가 모여 있는 거리를 흔히 사창가 또는 홍등가라고 일컫는다. 홍등가는 2004923일에 성매매 특별법이 시행되기 전까지 사회에서 성매매를 할 수 있는 곳이라고 암묵적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지금은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홍등가 퇴거 의지와 움직임으로 그 모습을 감추고 이제 이름만 남은 곳이 대부분이다. 그 움직임으로 현재 철거가 진행 중인 곳이 대구의 자갈마당이다.

대구광역시 중구 도원동에 자리한 이곳은 일제강점기 일본인 주거지에 생겨난 공창으로 시작해 전성기에는 500여 개가 넘는 업소가 성업했다. 그러나 2004년 성매매 특별법 제정으로 수요가 감소하고, 2014년에 취임한 권영진 대구광역시장이 자갈마당 폐쇄를 공약으로 내세우며 홍등가 폐쇄에 강력한 의지를 보이며 쇠퇴의 길에 들어섰다. 이에 대구광역시는 성매매 집결지 정비 종합대책 수립(201511) 도원동 도심 부적격시설 주변정비추진단 구성·운영(20169)으로 자갈마당의 정비에 나섰고, 20178월에는 CCTV 6대를 설치해 자갈마당의 모든 출입구를 감시함으로써 성구매자들의 수요를 감소시켰다. 경찰과 지자체, 관계기관의 협업도 탁월했다. 경찰의 대대적인 단속을 통해 업주들이 고발되고 대구광역시 중구청은 자갈마당 내의 건축법 위반사항 10건에 행정처분을 내렸다. 아울러 대구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도 외국인 근로자들의 자갈마당 출입을 막기 위해 불법체류외국인 일제 단속을 하는 등 성구매자가 자갈마당에 출입하려는 의욕을 꺾어내는 시도를 했다.

성매매 수요를 차단하는 한편 성매매피해자 자활지원을 위한 움직임도 시작됐다. 대구광역시 성매매피해자 등의 자활지원조례 제정(201612) 현장상담소 개소 및 자활지원사업 시행(20177) 등 실효성 있는 정책들을 단계적으로 시행한 결과 지난 7월 기준 성매매피해여성 116명 중 76명이 자활지원대상자로 결정돼 주거비와 생계비, 직업훈련비를 지원받는다.

110여 년간 이 자리에 머물렀던 대구 자갈마당 철거공사가 한창이다. 자료사진 대구여성인권센터

해결 후 등장한 또 다른 문제

홍등가 폐쇄 정책을 시행해 온 끝에 대구광역시는 지난 6월부터 자갈마당을 철거하기 시작했다.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밤마다 홍등이 붉은빛을 내던 자리에 재개발을 위한 민영 개발사업이 승인돼 2023년에는 아파트와 오피스텔이 들어설 예정에 있다. 일각에서는 홍등가의 폐쇄로 성매매 업소들이 일반 주택가로 숨어들어 위장 영업을 하지 않겠냐는 문제도 거론된다. 이른바 풍선효과. 풍선의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불룩 튀어나오듯이 어떤 부분의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부분에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는 현상을 풍선효과라고 한다. 권 경감은 성매매는 이제 예전과 같은 업소가 아니라 원룸, 오피스텔 등 일반 주거지역으로 숨어들어 음성적으로 벌어지고 있기에 단속에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안동에서는 이미 홍등가의 쇠퇴로 업소들이 홍등가가 아닌 다양한 형태로 위장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조 주무관도 운흥동 일대 청소년 통행금지·제한구역에 있는 업소를 두고 이미 그곳은 사실상 자진폐쇄 수순에 접어들었다고 봐도 무방하다이미 남아있는 업소도 한두 곳밖에 남지 않았고 그 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도 연세가 60대를 넘긴 것으로 보이는데다가 이용자도 거의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권 경감도 시민들의 신고를 받고 성매매 단속을 하러 출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올해는 운흥동 성매매 업소에 관한 신고가 한 건도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권 경감은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곳에서 성매매가 100% 없어졌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며 성매매가 음성적으로 벌어진다는 특성을 다시 한번 더 강조했다.

어울리지 않는 이웃

사실상 자진폐쇄의 수순에 접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운흥동의 홍등가는 밤마다 불을 밝혀 손님맞이에 나선다. 홍등가에 불빛이 새어 나올 때쯤이면 길 건너편 지구대의 참수리도 달빛을 받으며 지역 치안을 살핀다. 성매매의 터전과 법질서수호의 일선이라는 이 둘의 아이러니한 이웃관계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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