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에 민주화를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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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에 민주화를 외치다
  • 서영건 기자
  • 승인 2019.06.13 13: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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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일이 아닌, 당연한 일”
온 거리에 넘친 민주화의 희망
1987년 6월, 안동의 움직임

 

도로 한복판에 차 대신 사람으로 가득 찬 때가 있었다. 드론 대신 최루탄이 머리 위를 날아다니던 때도 있었다. 도로를 가득 채운 사람들은 최루탄과 경찰의 방패에 맞서며 호헌철폐독재타도를 외쳤다. 19876월의 일이다.

6월 민주항쟁의 서두

1987114,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 박종철이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조사실에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시민들은 이를 규탄하는 거리 시위를 전개했다. 전두환 정부는 국민들의 요구가 거세지자 헌법 개정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413, 정부는 헌법을 개정할 시간이 부족했고 정치인들의 뜻을 모으지 못했다호헌 조치를 발표했다. 이에 시민들은 호헌 철폐독재 타도등을 외치며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펼쳤다. 69일 연세대 경영학과 2학년 이한열이 시위도중 최루탄에 맞아 혼수상태에 빠진 사건으로 시민들의 분노는 더욱 커졌고 이 분노는 안동에서도 이어졌다.

이한열 군 사건이 발생하기 약 4개월 전인 29, 안동문화회관 (경북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는 경찰의 고문으로 숨진 박종철 군을 위한 추도미사 및 고문 규탄 대회가 열렸다. 경찰은 전날부터 안동 시내 곳곳에 전경을 배치해 살벌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당일에는 1,500여명의 전투경찰을 배치했으며 문화회관에 걸린 현수막을 강제로 철거했다. 오후 2, 사제단은 문화회관 강당 정문으로 입당해 박종철 군의 영정 앞에 분향한 다음 미사를 시작했다. 당시 천주교 안동교구 정의평화위원장 김영필 신부는 경찰을 비롯한 모든 공무원들은 권력에 충성할 것이 아니라 법과 법 정신에 충성해야 할 것이며 고문 근절을 위해 범국민적 운동을 벌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421, ‘4·13 호헌철폐를 위한 교구 사제단 단식농성 및 철야기도회가 천주교 광주교구를 비롯해 전국 각지 성당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안동교구 사제들은 429일 오후 5시에 목성동 주교좌성당에서 호헌 철폐 및 민주 개헌을 위한 단식 기도회 시작하면서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유신 이래 빼앗긴 정부를 선택할 국민의 권리 회복을 위해 투옥된 양심수인들의 무조건 석방과 민주 인사들의 복권을 위해 국민 기본권의 보장과 언론 자유의 회복을 위해 현 정권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속죄와 현 정권의 참회를 통한 즉각 퇴진을 위해라는 기도지향을 내세우며 17명의 사제들이 무기한 단식기도에 들어갔다. 안동에서도 민주화를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이 시작된 것이다.

안동의 6.10

1987610, 그 날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렀다. 현재 가톨릭상지대학교 총장으로 재임 중인 정일 신부는 그 날은 전국적으로 데모를 하자는 약속이 있었다. 안동에서는 오후 4시에 문화회관에서 모이기로 했지만 회관을 이미 경찰이 포위하고 있었다6월 민주항쟁을 회상했다.

정 신부는 당시 천주교 안동교구 동부동 성당의 주임신부로 재임 중인 만 35세의 젊은 신부였다. 정 신부는 문화회관을 경찰이 포위하고 있었기에 문화회관으로 모일 수가 없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목성동 성당 앞으로 모이기 시작했다경찰의 진압이 무서운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였다. 그 때 내가 먼저 거리로 뛰어나갔고, 데모에 동참하기로 약속한 사람들이 뒤를 이었다고 했다. 6.10 가두행진은 목성동 성당 앞에서 시작해 목성교 사거리와 천리고가교 북단 사거리, 버스 터미널(홈플러스 안동점)을 지나 안동역에서 문화회관으로 향하는 경로였다. 한 사람의 용기가 시위의 시작이 됐다. 정 신부는 거리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자 일반 시민들도 행진에 참가해 거리가 사람으로 가득 찼다. 사람들이 밀물처럼 쏟아져 나왔기에 경찰의 최루탄도 우리를 막을 수 없었다. 거리 행진을 하며 안동 시내를 가로질렀던 기억이 난다며 안동에서의 6월 민주항쟁을 떠올렸다. 경찰이 시위 통제에 실패했다는 점을 두고 보아 이는 소규모의 단체 행동이 아니라 수많은 시민이 함께한 거사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안동에서도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들과 종교인들이 시위에 동참했지만, 그 중심이 된 것은 농민과 천주교였다. 소위 말하는 지식인에 비해 종교인들이 민주항쟁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정 신부는 천주교 신부들의 경우 처자식이 없어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했다가족 걱정할 필요 없이 내 뜻대로 할 수 있었다고 답했다. 진압이 두렵지 않았냐는 질문에 정 신부는 독재자가 설치는데 데모를 하지 않는 사람이 제정신이 아니다. 그때의 나는 젊어서 그랬는지 더더욱 그렇게 생각했다. 특별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다고 했다.

정 신부는 그 당시 우리나라는 이승만, 박정희 정권의 독재가 끝난 후 뭔가 새로운 세계가 올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다시 군부가 장악해 희망이 사라지니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서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정권을 세워야 한다고 자각한 것이다. 한 명, 두 명이 아닌 대다수의 국민들이 그 희망을 폭발시켰고, 그게 결국 6·29 선언으로 이어졌다6월 민주항쟁의 의의를 말했다.

6·29 선언과 개헌

전두환 정부는 경찰력을 총동원해 6월 민주 항쟁을 진압하려 했으나 독재 정치에 질린 국민들의 거센 저항과 민주화 요구를 이겨낼 수 없었다. 626일 거행된 국민평화대행진에는 100만여 명의 시위대가 나설 정도였다. 더는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외면할 수 없었던 신군부는 결국 국민 앞에 백기를 들었다. 629일 당시 민주정의당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가 대통령직선제의 수용 및 대통령선거법의 개정 언론기본법 폐지 등의 언론 자유 보장 인간 존엄성 존중 및 국민기본권 신장 자유로운 정당 활동 보장 지방자치제와 대학 자율화 실시 김대중의 사면복권 및 시국관련 사범 석방 등의 내용이 포함된 6·29민주화선언을 발표했다.

안동에서 6월 민주항쟁에 참가한 박효진(민속·79) 동문은 “6.29 선언이 발표 됐을 때 온 나라가 환호했다고 회상했다. 박 동문은 우리가 치열하게 민주화를 외쳐서 이를 이뤄냈다는 것에 정말 감격했다고 전했다. ‘드디어 민주화가 이뤄진다는 희망이 온 거리에 넘쳤고, 독재의 종식에 많은 이들이 그 기쁨을 마음껏 표출했다.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한민국 역사상 9번째 개헌이 이뤄졌다. 최초로 여야 합의하에 개헌안이 의결됐고, 국회를 통과한 개헌안은 1027일 국민투표에서 93.1%의 찬성을 얻어 29일 공포됐으며 1988225일부터 시행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주권은 국민에게

6월 민주항쟁은 박정희 정권으로 시작돼 수십 년에 걸친 군부독재를 국민의 힘으로 청산시킨 사건으로 평가된다. 헌법이 주권자로 선언한 국민을 무시하며 호헌을 외친 모순된 정권을 굴복시킨 것이다. 이는 세계 민주주의 역사의 민주주의 확산이라는 측면에서 4.19혁명과 5.18 민주화운동과 함께 시민들의 힘으로 민주화를 쟁취한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된다. 주권을 국민에게 부여한다는 조문은 1987년 개정된 제6공화국 헌법에도 계승돼 오늘날에 이르러 오고 있다.

천주교 안동교구 교회사 연구소장으로 재임 중인 신대원 신부는 민주화의 어제를 알아야 오늘을 알고, 내일은 지금의 학생들 몫이다고 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한 번에 이룩한 것이 아니라 수십 년에 걸친 수많은 시민들의 죽음과 희생의 결과물이다. 이로써 탄생한 9차 개정 헌법은 헌법에 마련된 개정절차에 따라 여야합의에 의해 이뤄진 전면 개헌이다. 국민의 요구에 따라 권위주의시대를 끝내는 헌법을 만들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우리 헌법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규정을 명시해 국민주권주의를 선언한다. 이는 1948년 제헌헌법부터 1987년에 개헌된 현행 헌법에 이르기까지 9차에 걸친 개헌과정에서도 그대로 유지돼왔다. 우리나라의 주권자는 국민이고, 국가는 주권자가 원활히 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이를 위해 국가권력은 입법·행정·사법의 3권으로 분립돼있다. 우리나라에서의 민주주의가 이제는 피가 아닌, 대화와 소통을 먹고 자라는 날이 이어질 수 있도록 국민들의 많은 관심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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