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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회 솔뫼문화상 수필 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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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관…     admin@domain.com
0 115 2016-11-23 17:00

<불행의 기원>
-현대 한국인에게 있어서-

                                                                                                                문성환(민속학과, 13학번)

때는 2015년, 어느 무더운 여름이었다. 당시 해군에서 운전 조교로 근무하고 있었고 상병도 달았으며, 군대생활에 적응도 했기에 비교적 편안하게 삶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그저 하루하루 정해진 일과의 일을 하고, 그 외의 시간에는 운동하거나 책을 읽는 것이 생활 전부였다. 그러던 중 내 생각에 큰 충격을 준 사건을 맞이하게 된다. 그 날도 평소와 같이 나는 운전 조교로서 훈련병을 운전석에 태우고, 나는 조수석에 타서 훈련병의 운전을 지도하고 있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창원 로터리를 지나서 도청으로 나아갔는데, 그때 창원 공단의 노동자들이 시위하고 있었다.
그 수는 족히 수백 명은 넘어 보였다. 그때 당시 날씨가 더워 차량의 창문을 열고 있었는데, 아마 그 사이로 군복을 입은 나의 모습이 시위하는 사람들에게 눈에 띄었던 모양이다. 그들은 나를 손가락질하며 ‘해군 살인마 놈이 여기는 뭣 하러 왔나?’ 하며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몇몇 사람들은 우리가 원활하게 지나가지 못하게 일부러 길을 천천히 건너며 운전을 하지 못하게 방해했다. 잔뜩 당황한 나는 상사에게 보고하고 그대로 U턴을 해서 부대로 원대 복귀했다.
이때까지도 나는 내가 겪었던 이 사건을 그저 어쩌다 생기는 재수 없는 일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그러던 중 휴가를 갔고, 근무하던 부대와 가까운 친척 집에서 사복으로 갈아입은 후에 집으로 가던 중이었다. 버스터미널로 천천히 가던 중에 여전히 진행 중이던 그 시위를 보았다. 그때처럼 사람이 많이 모여 있지는 않았지만, 그 사람들은 계속해서 시위를 진행하는 중이었다. 그 사람들은 ‘세월호의 진상규명을 위한 서명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나에게도 서명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었다. 나는 군인이라는 이유로 정중히 거절했다. 그런데 그들의 반응이 정말 의외였다. 예를 들어 ‘아 군인이세요? 제 남자친구도 군대에 있는데 파이팅입니다.’라고 하거나, ‘어 나도 해군 나왔는데 힘내세요!’라고 하는 등 굉장히 친절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나에게 살인마라고 했던 집단의 사람들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리둥절한 기분이 들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군복을 입고 운전할 때 나를 욕하던 사람들이 왜 사복을 입은 나를 보았을 때는 왜 욕을 하지 않았을까? 나는 그때 그냥 평범하게 일과를 진행하고 있었을 뿐인데, 왜 나는 살인마라고 비난을 들어야 했을까? 내 군복 때문일까? 아니면 그때 그 사람들이 유독 반정부적인 사람들이라서 그랬던 것일까? 이런 거로 고민하는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 복잡한 생각이 머리를 짓누르는 그때 깨달음 하나가 머릿속을 총알처럼 꿰뚫고 지나갔다.
현재 대한민국 젊은 남성들을 불행의 구렁텅이로 몰고 가는 것 중 하나는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거부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의무를 수행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불행한 것은 단순히 의무를 수행한다는 그 이유만으로 자신을 비하하거나, 사회의 존중을 받지 못하거나 심지어 존중은커녕 그 조직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적인 비난과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고에서 더 나아가 한국인을 불행하게 만드는 요인은 각 개인을 둘러싼 법적 혹은 사회 관습적인 규제라고 생각한다. 여자에게는 ‘결혼은 언제 할 거냐?’, ‘집안일은 여자가 해야지’라고 은연중에 강요하는 것, 공공연하게 ‘동성애는 질병이다.’라고 말하는 어느 국회의원의 발언, 명절에 어른들이 젊은이에게 ‘취직은 언제 할 거냐?’, ‘그걸로(인문학, 예체능 일반적으로 취업이 어려운 분야) 먹고 살 수는 있냐?’라고 압박면접을 하듯이 스트레스를 주는 행위들이  한국인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청년들의 군대와 이것이 무슨 상관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그 근본은 같다. 사회와 국가가 각기 계층의 사람들에게 ‘정상적인 모습’이라는 틀을 강제하고, 이 틀에 맞추지 않는 사람들에게 (법적이든 사회 관습적이든) 압박을 주는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은 많은 내적갈등을 겪는다. 특히 ‘국방의 의무로 행해야 하는 임무’나 ‘동성애적 성향’처럼 일반적인 사람이 그것을 거부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일 때, 개인이 그 계층에 있다는 이유로 같은 국가와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정신적, 육체적인 침해를 당한다면 그 개인에게는 얼마나 큰 불행이겠는가?
이처럼 한국사회에서 가장 안타까운 일은 특정 계층의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개인의 존재가 규정당한다는 것이다. 이는 개인을 각 계층에 독립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고, 소속한 계층의 특정한 이미지에 따라 평가하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그저 일반 대중들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들 특히 소수자 집단들이나 개인의 의사를 자유롭게 행사할 수 없는 조직의 구성원에게는 크나큰 억울함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르다’라는 말과 ‘틀리다’라는 말을 구분하지 않는 국가와 지역사회, 다수집단의 이기가 개인의 의견을 억압하는 사회, 개인주의가 국가를 망치는 이기심이 현현한다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아 개인주의를 악으로 규정하는 곳! 이곳이 대한민국이라고 부르는 파시스트 국가의 현주소다. 이런 나라에서 기업은 다수집단이 도덕적으로 인정하는 것 이외에는 사업을 더 확장할 수 없고, 예술가는 다수집단이 사회 규범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 이외에는 활동을 할 수 없다. 그리하여 서로서로 눈치만 보고, 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튀는 사람’은 지나치게 비판하고 견제한다. 그러면서도 입으로는 ‘애국하자! 애국하자!’만 외치는 야만인들이 사는 나라에 나는 살고 있으며, 비참하고 비겁하게 연명하고 있다.
<479- 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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