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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회 솔뫼문화상 수필 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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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관…     admin@domain.com
0 126 2016-11-23 16:58

나에게 있어 평범한 삶이란.

                                                                                                          박창수(중어중문학과, 05학번)

 ‘여러분의 꿈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내가 말해왔던 한결같은 대답이 있다. 바로 ‘평범한 직장을 가지고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다.’라고. 어릴 적에는 그렇게도 하고 싶은 게 많았다. 대통령은 기본 옵션이었으며 과학자, 야구선수, 만화가, 작가 등……. 수많은 직업이 나의 그 조그마한 머릿속에 꽉 차있었다. 시간이 흘러 중학생을 지나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나는 어렸을 적에 가졌던 그 가지각색의 장래희망을 모조리 엎어버리고 단순히 평범한 직장으로 일축해버렸다. 당시의 나는 지금과도 똑같이 특출한 재능, 특기가 없는 사람이었다. 성적도 반에서 중간 정도는 되었고, 친구들 모두 즐겨하던 축구나 농구도 어느 정도 하는 편이었으며, PC방에서 친구들과 함께 온라인 게임을 즐겼고, 대한민국 어디를 가도 볼 수 있을 법한 흔한 외모를 가진, 말 그대로 평범함의 극치를 달리는 사람이었다. 이 평범한 인생의 일그러짐은 바로 잦은 휴학으로 인해 미루고 또 미루어진 내 대학 생활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이번 학기 복학을 결심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물론 나 같은 사람이 전국을 통틀어 보았을 때 없는 케이스는 아니겠지만, 나이 서른이 넘어서 아직도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사회적인 기준으로 보았을 때 결코 평범하지만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삼촌뻘 되는 복학생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학과 후배들, 그리고 신입생 때는 그렇게 아득하고도 높게만 보였던 조교 선생님이 이제 나에게 형님이라고 부르며 허리를 굽히는 모습이 너무나도 낯설게만 느껴진다. 낯설다는 감정은 결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이기에……. 항상 평범하다고만 생각했던 나와 나의 인생이 이제는 평범하지 않게 되어버린 것일까 생각해버렸다. 평범한 사회인의 산물인 졸업장을 손에 쥐기 위해 다니고 있던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학생의 신분으로 되돌아왔다. 큰 아들이 대학 졸업을 하지 못해 작은 아들의 학사모를 쓴 모습을 은근히 보고 싶어 하시는 부모님의 바람도 적지 않은 이유가 되었지만, 집안에 손을 빌리기 싫다는 이유로 전역 후 등록금과 생활비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적지 않은 휴학을 해야 했던 나의 자존심이 벌인, 맞추다 만 퍼즐 같은 대학 생활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나는 지금 이 미완의 퍼즐을 열심히 맞춰나가는 중이다.

 다시 돌아온 학교는 내게 예전 같지 않았다. 몇 년 전 학교를 다닐 그 때만 해도 이런 이질감을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당시의 내 기준으로는 어쩔 수 없는 판단이었으며 가장 최선의 방법을 택하라면 선택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답안이었다. 조금 늦긴 했지만 이 선택이 나를 계속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게끔 만들어 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적어도 이 대학교라는 곳에 속해있는 지금의 나, 그리고 사회의 기준에 비춰진 지금의 나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사회구성원들의 대다수가 공감한 그 비공식적인 기준선을 내게 적용한 순간, 나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 된 것이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기준의 커다란 틀은 우리가 구성하고 있는 이 사회를 토대로 만들어진다.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구성원 대다수가 공감하는 그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회인이란 회사에서 상사에게 치이고 후배에게 쫓기는 월급 150만원에서 300만원 사이의 직장인이라고 2년여 간의 직장생활로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친구들 혹은 동료들과 술을 마시며 풀며, 각자 자신의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토로하고 공감하며 서로를 위로한다. 결국 가장 많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다시 말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계층의 삶이 그 사회 안에서의 평범함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연봉 1억 원의 대기업 직원이 자신을 평범하다고 했을 때, 과연 몇 퍼센트의, 아니 몇 명의 사람이 그의 말에 공감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이 대학이라는 곳에 늦은 나이로 복학하면서 ‘고등학교 졸업 후에 가는 대학교’라는 사회적 공감대에 들어가지 못 하고 평범하지 않은 사람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물론 이번 학기에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모두 채우고 졸업장을 따서 어느 회사에 취직을 하게 되면, 그 회사가 대기업이나 전문가들만 들어갈 수 있는, 연봉과 복지의 수준이 확연히 다른 직장이 아니라는 가정 하에 나는 다시 평범한 사회의 구성원 중 한 명으로 되돌아 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반년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 평범한, 그리고 평범하지 않은 삶을 왔다 갔다 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재미있으면서도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평범한 인생, 혹은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구분 짓는 것, 즉 가이드라인(Guide Line)은 사회 다수(多數)계층의 공감 그 자체이다. 자신 혹은 어느 한 사람이 자신의 기준에서 봤을 때 이건 지극히 평범한 것이라고 아무리 주장해도 그것이 사회적으로 보편화 되어있는 평범함의 기준과 거리가 멀다면 타인의 공감을 얻을 수 없으며 보편화 될 수 없는 것이다. 어느 누군가가 당신에게 ‘당신은 참 평범한 인생을 살고 계시네요.’ 라고 말했다면, 그 화자가 생각하는 평범함의 기준과 사회적 평범함의 기준은 거의 일치하는 수준일 것이다. 마치 늦은 대학 생활을 하고 있는 내게 평범한 생활을 한다고 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하지만 그것이 정답이라는 말은 하기가 싫어진다. ‘인생은 ~이다’를 한 마디,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 쉽지 않듯이, 어느 한 사람이 가진 특징과 특색, 그 사람이 살아온, 그리고 살아갈 삶의 롤러코스터는 높이가 다를 터인데 다수의 공감으로 보편화된 사회적 평범함의 기준에 어느 한 사람을 평범하다, 평범하지 않다며 단정(斷定)지어버리는 것이 혹시 잘못된 생각은 아닐까? 어쩌면 사회적 평범함의 기준이라는 잣대로 나 혹은 다른 사람의 평범한 삶을 오히려 이단(異端)으로 치부해버리는 우(愚)를 범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결국 평범하고 하지 않고를 보편적 기준으로 판단 할 수는 있으나, 그것이 단언컨대 옳은 잣대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결론 내리고 싶다. There is nothing natural in the world.(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사회가 우리에게 주는 평범함의 독재(獨裁)적인 의미부여에도 이 말은 충분히 적용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글을 맺는다.
<479- 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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