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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회 솔뫼문화상 수필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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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관…     admin@domain.com
0 137 2016-11-23 16:57

나쁜 동호회

                                                                                      김범창(한국문화산업전문대학원, 1학년)

 본인이 지구상에 혜성처럼 등장 한 후 처음으로 접했던 스포츠는 농구였다. 첫 경험은 아동용 농구대였는데 작은 구멍에 공이 쏙 들어가는 것을 보고 어린놈이 벌써부터 거기에 묘한 쾌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슬램덩크를 접했고 농구에 흠뻑 빠졌다. 마치 블리츠 크랭크를 픽하면 자연스럽게 인베를 가는 것처럼.
 물론 강백호세대와 박지성세대의 교집합을 가지고 있던 터라 축구도 좋아했다. 하지만 182cm에 0.1톤이 넘는 고교 시절 피지컬로는 축구에는 거의 쓸모가 없었고, 농구에서는 서 있기만해도 아군 적군가리지 않고 모두 스크린을 걸어버리는 무자비한 전봇대로 쓰임이 있었다. 그렇게 쉬는 시간, 야자시간을 가리지 않고 농구를 하고 바스켓맨으로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었다.
 대학교 입학 후에는 학교에 딱히 농구를 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1학년 때 체육대회에 나갔다 경기시작 10초만에 선배와 교체되는 수모를 겪은 후 농구를 잠시 가슴에 묻어 두었다. 조던8 농구화와 함께. 그리고 국방의 의무(사회복무요원..)를 위해 고향에 내려갔고 고향에서 운명적으로 농구 동호회를 알게 되었다.
 그 농구 동호회는 지역에서 농구를 꽤나 잘하는 팀 출신의 사람들이 만든 생활체육 동호회였다. 고교시절 실제로 대단하다 생각했던 팀 출신 분과 같이 운동하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곳이라면 열심히 실력을 갈고 닦아 학교 복학 후 체육대회에 주전으로 당당하게 코트를 누빌게 될 것이라고 다짐하며 가입했다.
 처음 모임에 참석한 날 체계적인 드리블, 슛, 스크린, 박스아웃을 배우며 ‘이것이 진정한 바스켓 맨의 세계’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후 다른 팀과 붙기도 하고 경험삼아 대회도 나가고 마치 일본 청춘영화에서 보던 화사한 여름날의 모습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한 주에 2~3번 모이던 모임이 5~6번씩 늘어났다는 점이었다. 카카오톡 단톡방도 없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오후 4시만 되면 ‘저녁에 번개?’이라는 문자가 날아왔고 주말, 평일 가리지 않고 오는 모임 문자가 점점 노이로제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아리 주축 나이 또래인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부원이 늘면서 20대 초반의 막내였던 나는 더 막내가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카스트제도의 가장 바닥인 수드라의 영역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동호회를 나오게 된 일이 터졌다. 농구를 하던 곳은 필자가 다니던 집 근처 헬스장 앞이었다. 한 날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다고 문자를 보내고 헬스를 갔다. 운동을 마치고 동호회가 농구를 하는 것을 피해 집에 가기 위해 건물 뒤쪽에 있는 흙 언덕으로 내려왔다. 그 모습을 회원 한 명에게 걸렸고 난 그 자리에서 ‘인간 안 된 자식아, 나이도 어린 새끼가 형님들 꼬박꼬박 나오는데 니가 뭔데 자꾸 빠지냐?’라는 말을 들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너님 나랑 친해요?’
 그 곳은 더 이상 동호회가 아니었다. 마치 돌격남자훈련소처럼 자기들끼리 으쌰으쌰하며 친목질에 취한 남자들의 도피처, 외로움 해우소 그리고 사회스트레스 푸는 하나의 분출구일 뿐이었다. 어느 순간 아랫사람은 윗사람들 말에 따라야 하고, 실수하나에 흉과 나쁜 시선이 쏟아졌다. 그렇게 난 농구를 싫어하게 된 장발의 정우성처럼 코트를 떠났다.
 수컷집단에서는 군대에서 배워온 못돼 먹은 특유의 갈굼과 상하문화가 존재한다. 대게 남성중심의 집단에서 서열은 나이, 짬순, 권력과의 친밀함으로 결정되는데(종종 개인이 가진 힘으로 그것이 전복되기도 한다.) 이 것 만큼 누군가의 우위에 서기 쉬운 것은 없다. 그때 그 사람이 나에게 그렇게 말했던 것은 그 남자가 선천적으로 10색 크레파스가 아니라 그냥 나에게서 표현의 제약을 느끼지 못했을 이유가 컷을 것이다. 내가 자기보다 어렸으니까. 사실 나는 그 사람보다 먼저 회원이었고 따지고 보면 오히려 정규 모임은 꼬박꼬박 잘 참석하는 회원이었다.
 짝사랑의 가장 비참한 결말 중 하나는 상대방이 바라지도 않았는데 자기 혼자 잘해주고 내 맘을 몰라준다고 상대에게 욕하고 징징거리는 것인데, 사회에서 상(上)에 위치한 사람들이 가장 흔히 하는 착각이 이와 같다. 바라지도 않은 술자리, 모임에 끌고 다니며 웃음거리 만들고 집에 갈 때 ‘내가 널 얼마나 아끼는지 알지?’라며 ‘넌 내 사람’이라고 걸리지도 않을 최면을 건다. 그리고 말을 안들으면?
 복종과 충성심은 남성집단을 대표하는 대명사이다. 금전, 이해관계 때문에 불이익이나 부당함을 감내해야 하기도 하고, 모욕적인 상황에서도 가만히 있어야 한다. 우리는 복종과 충성심을 가장한 집단 폭력과 침묵을 은연중에 학습해왔고, 이러한 사회악은 사람의 마음을 병들게 하고 비참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피해자가 가해자의 위치가 되면 다시 반복 한다는 것도.
 얼마 전 그 때 다녔던 헬스장을 다시 등록하러 가는 길에 농구코트를 봤다. 그 동호회는 결국 파벌싸움이 나서 두 개로 갈라졌다고 한다. 바람이 불자 아무도 없는 코트의 먼지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479- 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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